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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친애하는 정치인 여러분

입력
1999.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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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장관이 고위관료와 국회의원의 다른 점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첫째, 관료는 장관, 장관은 대통령 하나만을 위해 일하면 되지만, 의원은 모든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 둘째, 관료는 누가 돈을 주면 10리 밖으로 도망가야 하지만 의원은 고개 숙여 받아야 한다. 셋째, 관료는 박봉에도 긍지로 살아가지만 의원은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굽신거려야 한다」. 그는 내년 4월총선에 출마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고위관료가 국회의원이 될 수 없는 이유 3가지를 이렇게 대면서 부인했습니다.장관이 대통령만을 위해 일하면 된다는 말에는 문제가 있지만 국회의원들이 모든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체 국민이 아니라 지역구와 자신이 소속된 직역(職域) 또는 업권의 확대를 위해 일하는 의원들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은 정기국회 회기중이지만 의원들은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의정활동은 엉망이 돼 있고 시급히 처리해야 될 각종 개혁·민생법안의 회기내 통과여부가 불투명합니다. 새해 예산안은 이미 법정시한을 넘긴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의원들은 선거법협상과 자신의 선거구가 어떻게 되는가에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총선에서의 표를 의식해 1월에 국회를 통과한 교원정년을 63세로 1년 연장하자거나 아예 65세로 환원하자는 대책없는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교육개혁의 핵심과제 중 하나라며 고육공무원법을 개정한지 불과 11개월만입니다. 국민들은 왜 선거철만 되면 선거구를 고쳐야 하는지, 꼭 선거법협상을 새로 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운데도 여야는 정치개혁은 뒷전으로 미룬채 이 문제로 시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굳이 선거구를 고쳐야 한다면 서두르기라도 했어야 할 텐데 총선이 4개월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아 중앙선관위를 비롯한 선거행정기구에 짐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정치인들은 올해에도 벼락치기로 밤샘공부하는 학생들처럼 각종 법안과 의안을 처리할 테고 일부는 내년으로 미루겠지만, 그렇게 처리한 의안들이 제대로 심의를 거친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습니다.

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가 최근 의원 299명 전원을 직무유기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신생정당의 존재를 알리는 홍보전략의 하나로 볼 수도 있지만, 일을 하지 않는 의원들을 고발하고 처벌받게 하고 싶은 것은 국민 일반의 마음일 것입니다.

이미 2월에도 경실련이 국회파행과 장기공전을 문제삼아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었고 이에 따라 의원 전원에게 소환장이 발부됐습니다. 그 때 법원이 의원들의 행태를 현행법상 위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해서인지 정치권은 이번에도 태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의정감시는 이미 사회운동으로 정착돼 있습니다. 10월의 국정감사에서도 나타난 바 있지만 시민단체등은 일을 하지 않는 의원들을 혼내 주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부정부패 연루자, 개혁입법 반대자, 의정활동 외면자들에 대해 현행법상 불법 여부에 관계없이 낙선운동을 하기 위한 연대기구를 곧 발족시킬 예정이라고 합니다.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의원들은 조직적인 활동에 의해 표로 심판을 받게 될 전망입니다.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정치란 국민이 편안한 가운데 생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또 내일에의 예측 가능한 희망을 갖도록 뒷받침해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우리 정치는 오히려 국민의 짐이 되고 있으므로 정치권은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고, 정치 본연의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정치개혁을 이른 시일 내에 이루어야 한다는 말도 합니다.

그런데 내일에 희망을 갖게 하기는 커녕 내각제를 한다는 건지 안한다는 건지, 합당이라는 말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조차 불분명합니다. 갈피를 잡기 어렵습니다.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세비는 14.3%나 인상하려 합니다. 차라리 뭘 모르거나 말이라도 못하면 덜 미울 텐데 우리 정치인들은 알 건 다 알고 말도 참 잘합니다.

국회의원들이 없으면 국민들은 무엇이 불편하겠습니까. 별로 불편할 일이 없을 것같습니다. 오히려 편해질 것같습니다. 부디 일 좀 하십시오.

/임철순 편집국 국차장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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