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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을 견디며 산다… 그런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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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을 견디며 산다… 그런데 왜?

입력
1999.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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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나는 삶이 주는 모욕을 견딘다. 그런데, 무엇을 위하여?』 배수아(34)씨 소설의 핵심은 그의 단편 「병든 애인」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 말에 집약되어 있는 것같다. 모욕적인 삶이라도 살아남겠다, 그런데 왜, 어떻게 살아가나.물론 그의 또 다른 주인공들, 그의 다른 단편 「200호실 국장」의 한나처럼 실연을 예감하고는 유리창 밖을 내다보며 『여기서 뛰어내리자. 그러면 되는 거야』라고 독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모욕을 어쩔 수 없이라도 견디면서 살아가는 모습들이다. 『인생은 어느 순간에 반드시 붕괴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 채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식으로 일상이, 삶이, 역사가 계속된다』는 배씨의 말처럼.

이런 작품들이 실린 그의 네번째 창작집 「그 사람의 첫사랑」(생각의나무 발행)은 배수아 소설의 분명한 전환을 보여주는 소설집이다. 배수아 하면 신세대소설가, 종잡을 수 없는 카오스같은 글쓰기의 작가, 혹은 서사보다는 영화같은 이미지만 던지는 작가라느니 하는 꼬리표가 늘 따라붙었지만 「그 사람의 첫사랑」에 실린 소설들은 그의 이전 작품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달리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실 이전 글쓰기에 대한 나의 기본적 생각은 「읽기 쉬운 글은 평범하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이번 소설집에 실린 글들은 나를 죽이지는 않되,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의지를 갖고 썼습니다』

배씨의 말 중에서 이처럼 독자를 의식해서 「노력」하고 「의지」를 가졌다는 말은 무척 의미있게 들린다. 그는 등단과정부터가 소설가가 되겠다기보다는 스스로 즐기는 입장에서 소설을 썼던 작가다.

「심야통신」 등 이전의 세 창작집과 「랩소디 인 블루」등 장편들이 다 그렇다. 그의 작품들이 늘 문제작으로 평론가들에 의해서 거론됐지만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쉬 받아들여지지 못한(배씨는 스스로 자신의 독자가 한 1,000명이나 될까 하고 말했다) 이유가 일면 여기에 있기도 하다.

소재도 다양해져 「은둔하는 북(北)의 사람」 「200호실 국장」처럼 최근 그는 정보원소설 혹은 조직소설이라 이름붙일만한 묘하게 새로운 분위기의 재미있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소재와는 상관없이, 소설에 일반적인 심리 묘사보다는 마치 하드코어 갱 영화를 보는 것처럼 빠른 장면(상황) 전환으로 글을 끌어가는 스타일은 여전히 빛난다.

도무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배씨도 『메시지보다는 이미지의 아름다움이 나에게는 더 매력적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은 미(美)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이때 그가 말하는 미는 일반적인 아름다움의 의미가 아니라, 혐오스러울 정도로 독자를 긴장시키거나, 감정의 극단을 경험케 하는 그런 의미에서다.

배씨는 하루 진종일 일하고 다음날 하루는 걸러 쉬는 그런 직장에 다니며 글을 쓰는 소설가다. 그는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삶의 모욕을 견딜까. 『소설을 쓸 때는 내 마음대로 아닌가. 그만한 자유는 없다. 선과 악, 환상과 현실이 모두 내 것이다. 쓰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재미있는 일이다. 달리 할 줄 아는 일도 없다』 고 그는 말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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