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 4월10일 새벽 유고의 사라예보에서 날아든 「승전보」는 국민의 선잠을 깨운 낭보중 낭보였다. 한국여자탁구팀은 그해 3월 결단식을 가질때부터 국민의 관심대상이었다. 바로 72년 12월 스칸디나비아오픈탁구대회에서 여자 단·복식을 석권한 신예 이에리사(당시 19세)때문이었다.이에리사 정현숙 박미라 나인숙 김순옥 등 어린 선수들의 동정은 거의 매일 신문을 장식했고 김창원단장, 이경호총감독, 천영석코치의 「필승다짐」인터뷰도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개막일인 4월5일. 이역만리서 처음 맞붙은 루마니아를 3-0으로 가볍게 완파한 여자팀은 2일째 경기서 만난 강호 서독도 3-0으로 제압,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던 국민들을 서서히 흥분시키기 시작했다.
7일 스위스 프랑스 유고를 모두 3-0으로 물리친 「한국의 딸들」은 예선리그 마지막날 경기서 세계최강 중공을 3-1로 꺾는 대회 최대 파란을 일으켰다. 예선전적 6전6승.
9일 결승리그서 헝가리마저 3-1로 제친 한국은 드디어 신화가 완성되는 운명의 10일을 맞았다. 희생양은 난적 일본, 주인공은 이에리사. 첫 단식서 일본랭킹 1위 요코다를 21-12, 21-10으로 꺾은 이에리사는 복식서도 박미라와 짝을 이뤄 요코다·오제키조를 2-0으로 제압했다.
이에리사는 이어 강드라이브와 스매싱을 앞세워 오제키와의 단식마저도 2-1(21-10, 21-23, 21-14)로 따내는 기적을 연출했다. 한국탁구가 첫 출전한 56년 도쿄대회 이후 17년만에 일궈낸 쾌거이자 구기종목 사상 처음으로 세계대회를 제패하는 순간이었다.
23일 귀국한 한국선수단에게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수준의 환영행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포공항에서 환영식장인 시청앞까지 카퍼레이드가 펼쳐졌고 선수 1명씩을 태운 오픈카가 소공동 일대를 지날 때는 오색 종이꽃가루가 눈처럼 휘날렸다.
환영식장에는 무려 3만여명의 시민이 몰려 「이에리사」를 연호했고 시인 박목월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겨레의 딸들이 이기고 돌아왔다」는 축시를 낭독했다. 선수일행은 환영식후 청와대로 직행,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는 영예도 안았다.
「사라예보 신화」는 양영자 현정화 유남규 김기택 등 스타들에 의해 더욱 아름답게 전승됐다. 특히 현정화(현 한국마사회 코치)는 87년 인도 뉴델리대회 여자복식 금메달을 시작으로 89년 도르트문트대회 혼합복식, 91년 지바대회 여자단체, 93년 스웨덴 외테보리대회 단식까지 제패, 탁구선수로는 세계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 4개 전종목을 석권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현재 현대백화점 탁구단감독으로 지도자 길을 걷고 있는 이에리사는 『일본선수를 꺾었을 때의 그 안도감, 카퍼레이드를 지켜보던 수많은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성 등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온다』며 『후배선수들이 자기인생중 반드시 하나는 이루고 말겠다는 정신으로 무장, 21세기에 「제2의 사라예보 신화」를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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