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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세기말은 있긴 있나? -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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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세기말은 있긴 있나? - 박완서

입력
1999.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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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0년대 생이고, 그 때 우리의 평균수명은 사십몇세였다. 회갑을 넘긴 노인은 친척이나 마을에서도 희귀했고 오십만 넘어도 허리가 휘고 이가 빠져서 그런 나이까지 산다는 건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철이 들고 어미가 된 후에도 내 자식들 공부 마치고 결혼시킬 때까지가 내가 살고 싶은 최대한이었기 때문에 두 세기에 걸쳐서 살 수 있으리라곤 꿈에도 몰랐다.그러나 어떤 돌발사고가 없는 이상 두 세기에 걸쳐서 사는 걸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70대란 나이가 싫고 내 계획에 없던 새로운 세기가 좀 무섭다. 운전도 못하는 주제에 대중적인 교통수단내의 핸드폰 통화소리가 지겹고, 밤새도록 사이버 세계에서 노닐다가 등교시간에 허둥대는 손자가 이방인처럼 낯설다.

아무리 세기가 바뀐다 해도 그런 것들을 내가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비록 컴퓨터로 글을 쓴다고는 하나 그건 나에게 필기도구가 좀 더 편한 걸로 바뀌었다는 것외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물건이고 모임이고 온통 밀레니엄자가 붙어다니는 걸 보면 새로운 세기란 새로운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상품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무슨 꼴을 더 보게 될지 두려워질 때마다 깊은 골짜기처럼 몇 백년을 변화 없이 고여있던 농경사회에서 끌려나와 「칙칙폭폭」 괴수처럼 검은 입김을 토하며 달리는 거대한 증기기관차를 타고 도시로 향하던 유년기를 회상하며 자위하곤 한다. 그 때 그 어린 계집애는 불과 몇 시간 동안에 몇세기도 훌쩍 뛰어넘었노라고.

지금 창밖의 겨울 나무들은 앙상하지만 의연하다. 나무들의 마지막 허영인 단풍의 시간은 꽃의 영광만큼 짧았다. 모든 영광과 허식을 벗어던진 나무의 아름다움, 겨울 숲의 적요가 마음에 스미는 물빛 새벽에 한잔의 커피는 나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낙이다.

커피 취미는 점점 까다롭고 복잡해져 이제는 인스턴트보다는 원두커피가 입에 맞고, 원두를 갈 때의 소리와 냄새까지도 좋고, 뽑아낼 때의 향기도 헤이즐넛인지 블루마운틴인지 아이리시인지 알아 맞출수 있는 코가 나를 으쓱하게도 한다.

무엇보다도 한 잔의 커피가 주는 머리가 쨍하니 투명해지는 듯한 각성의 시간과 은은한 평화를 좋아하고, 행복이 별 건가 바로 이게 행복이지 싶은 충족감을 좋아한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청 데친 것에다 멸치 넣고 된장 좀 풀어서 부글부글 끓인 것이다.

그 시커먼 우거지 줄거리를 서리서리 밥 위에 얹어서 먹는 맛과 바꿀 수 있는 진미를 나는 아직 모른다. 나는 싱싱한 무청만 보면 길이나 시장 모퉁이에서도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주워 담는다. 싱싱한 무청이라고 다 맛있는 건 아니다.

나는 어떤 무청이 맛있는지 손으로 만져보면 당장 안다. 그냥 데쳐도 맛있는 것도 있고 껍질을 벗겨서 데쳐야 먹을만한 것도 있다.

IMF에서 벗어난 건지, 새천년에 대한 기대때문인지, 올 연말엔 유난히 모임이 잦다. 초대 받았다고 다 가는 것도 아닌데도 어제는 점심 저녁을 다 양식으로 먹는 호사를 누렸다. 그러나 밤에는 속이 편치 않아 잠이 안왔다.

과식한 것 같기도 하고,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한 종잡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부엌에 나와 냄비 뚜껑을 이것 저것 열어보니 마침 무청 우거지를 멸치 넣고 지진 된장찌개가 남아 있었다. 그걸 몇줄기 맨손으로 집어먹는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들뜬 소화기관이 제자리에 정비된 것처럼 개운해졌다. 그 맛은 내 궁핍한 시절의 기억인 동시에 궁핍할 때도 불행하지만은 않았다는 기억이기도 하다. 커피와 우거지를 동시에 신봉하는 내 몸의 이중성이 가소롭기도 하지만 대견하기도 하다.

그만하면 새천년이 나에게 허락한 시간도 허위단심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내가 불안해 하는 건 새천년이 아니라 내 몸의 70대였던 것이다. 시간, 지는 형체도 마디도 없으면서 우리 몸에 어김없이 마디를 긋고 지나가는구나.

/박완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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