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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곳에 구원… 우리 핏속엔 불교도 흐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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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곳에 구원… 우리 핏속엔 불교도 흐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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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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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간다는 느낌이 올해만큼 무거운 해도 없을 것이다. 1년이 아닌 천년이 저물고 있으니 말이다. 새 천년의 광휘를 맞기 위한 암흑일까. 올 한해 어두운 사건이 유독 많았다. 티없이 맑은 어린 천사들을 화재로 잃어야 했고 술값을 못받을까봐 청소년들을 불 속에 가둔 지옥이 실재했다. 도덕의 잣대가 되어야 할 검찰의 추락을 겪었는가 하면 성경에 손 얹고 거짓을 맹세한 여인네들 때문에 진실과 정의의 가치가 깃털처럼 가벼워진 세상을 새삼 실감했다.종교인과 작가로 정신의 세계를 관장하는 두 사람이 만났다. 인간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묻기 위해.

_ 추기경께서는 운전면허는 따셨는지요.

김수환= 98년 서울대교구장을 그만두면서 『마음껏 쉬면서 운전면허도 딸 생각』이라고 했는데 더 바빠져서 아무래도 못딸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만 해도 14,15일에는 성당에서, 17일에는 검찰청에서 초청강연이 있습니다. 몸무게도 6㎏이나 줄었어요. 하느님 곁으로 갈 때 가벼워서 좋겠죠(웃음). 등산을 좋아해서 1주일에 한번은 꼭 북한산엘 갔는데 6개월째 한번도 못가고 있어요. (가톨릭 홈페이지를 통해) 저한테 오는 이메일도 답장이 많이 밀렸습니다.

최인호 = 답장은 직접 쓰시나요.

김수환 = 너무 바빠서 답장이 밀렸을 땐 수녀님한테 불러주면서 쳐달라고 하지요. 제가 아직은 컴퓨터를 치는 속도가 빠르지 않아요.

최인호 = 추기경님보다 제가 23년이 어린데 제가 더 노인같네요. 저는 아직도 컴퓨터를 못해서 직접 씁니다.

_ 두 분은 전에도 만난 적이 있으시지요.

김수환 = 이렇게 가까이서 본 기억은 없지만 가톨릭 서울주보에 실리는 최인호씨의 글을 매주 읽었기 때문에 친숙한 느낌입니다.

최인호 = 97년 2월에 뮤지컬 「겨울나그네」가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될 때 신부님 역할을 진짜 신부님이 하셨거든요. 그때 추기경님께서 보러 오셨습니다. 저한테 왜 주인공을 죽게 했느냐고 물으셨어요.

김수환 = 그랬나요. 실은 오늘 최인호씨를 만난다고 해서 어제 밤에 최인호씨가 쓴 책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를 읽었습니다. 다 읽진 못했지만. 불교에 대해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최인호 = 제가 가톨릭 신자면서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고 썼다고 항의편지도 많이 옵니다. 가톨릭이 내 정신의 아버지라면 불교는 내 영혼의 어머니와 같다는 뜻으로 쓴 것인데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_추기경께서도 70년대에 한국인의 피에는 불교가 흐르고 있다고 글을 썼다가 곤욕을 치르신 적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김수환 = 강원룡(姜元龍)목사가 하신 「대화」라는 잡지가 있었어요. 거기서 타종교와의 대화를 한 번 다뤘습니다. 여기에 나가 『우리 민족은 불교 유교적 전통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자기 안에 타종교와의 대화가 녹아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독일서 유학할 때 오스 구드가 쓴 「한국인과 그들의 문화」라는 영어책을 읽어보니 석굴암을 극찬했더군요. 저는 그때까지 불교 문화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석굴암을 꼭 가보리라 했지요. 바빠서 시간을 못내다가 마산교구 주교일 때 왜관에 회의차 가던 길에 경주를 지나가게 됐거든요.

옛날 생각이 나서 석굴암으로 갔습니다. 그때 처음 보살상을 가까이서 보았는데 꼭 희랍신화에 나오는 여신상 같았어요. 화강암으로 조각했는데 명주 옷을 통해 살결이 보이는 듯했어요. 40분인가 50분인가 그걸 보며 있었어요.

로마에서 피에타를 봐도 5분밖에 안 봤는데 이 불상에는 그렇게 마음이 끌렸어요. 그래서 강원룡목사와 대화하며 내 속에 불교적인 피가 흐르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한 것이지요. 당시 유신때였는데 내가 정부의 인권탄압을 많이 비판하고 그러니까 중앙정보부의 검열담당자가 이 내용을 보고 반공잡지에 「김수환추기경에게 묻는다」며 「불교의 피가 흐른다는 사람이 어떻게 정의 자유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할 수 있는가」라고 썼더군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차원은 너하고 다르다 생각하고 치워버렸습니다.

최인호 = 사실 불교는 1,622년간 우리 민족의 생활이자 정신의 정수였기 때문에 이를 떼놓고 어떤 사상이나 종교를 얘기하기 힘듭니다. 저는 성서의 가르침이 해일처럼 밀려오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현존을 믿습니다만… 영세받고 이듬해인 88년 오랜만에 글도 쓰지 않고 쉬다가 한말 승려 경허(鏡虛)의 법어집을 보게 되었어요. 「일 없음이 오히려 나의 할 일(無事猶成事)」이라는 대목을 보는 순간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후 경허의 두레박을 타고 하루하루 불교의 깊은 우물로 빠져들었죠. 분명히 깊은 종교의 정신에는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김수환= 교황이 인도를 방문했을 때 타종교인들의 시위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외국보다는 종교갈등이 적은 편이만 불상에 불을 지르고 단군상에서 목을 떼내는 등 양상이 심각합니다. 타종교에 대해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최인호= 우리나라에서 종교갈등이 전쟁 폭동등 열전(熱戰)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종교간 냉전은 더 걱정스럽습니다. 아예 담을 쌓아버리고 있어요.

김수환 = 종교에서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남을 이해하려는 생각이 적어서 걱정입니다. 저한테 오는 이메일도 남을 비난하는 글이 가끔 들어옵니다. 서로가 이해하고 북돋우려고 만든 통신인데 이럴 때는 차라리 이 통신을 폐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최인호 = 왜 사는가, 무얼 위해 사는가에 대한 생각들이 너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외침을 너도나도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선과 악의 구분이 사라지고 타락에 무감각해진 것이 아닐까요. 윤리는 사문화하고 이기심은 판칩니다.

김수환 = 사회의 거짓이 참 큰 문제입니다. 검찰청에서 강연을 해달라며 자료를 보냈는데.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구호니 윤리강령 같은 것들이지요. 거기 좋은 말은 다 있거든요. 이런 다짐에만 정직했더라도 검찰이 오늘같이 추락했을까 싶었습니다. 그대로만 하면 되는데 인간이니까 어렵지요. 우리는 지금 갈림길에 있습니다.

신명기 30장에 『오늘 내가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삼아서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 네게 이것을 내놓는다. 네가 택할 수 있다.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돈 권력 섹스가 아니라 진리를 선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과학문명이 발전할수록 신용이나 신뢰가 없으면 그 사회가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우리가 진실과 성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익히지 않으면 밝은 21세기는 없습니다.

최인호 = 냉장실과 냉동실이 분리된 「투_도어」냉장고처럼 사람들이 윤리와 자기 삶을 따로 떼어놓고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김수환= 저는 최근 변화에 희망을 갔고 있어요. 올해 베니스영화제 수상작만 해도 3개 주요부문의 수상작이 모두 인간과 진리를 다룬 작품이었습니다. 섹스와 흥미위주이던 이전과는 달라졌어요. 사람들이 인간다움의 문제를 진지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최인호= 저도 한국일보 연재소설 「상도」가 내년이면 끝나고 바쁜 일들이 마무리되면 이스라엘과 유럽을 순례하면서 신이 우리 한가운데 서 계시다는 것을 천명하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신의 복원이, 추기경님이 말씀하시는 정직한 사회로의 복원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김수환 = 이스라엘에 가면 헤로데의 유적은 남아있는데 예수님이 지나신 길은 건물과 도로로 바뀌어 흔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하느님의 길은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을 묵상하게 됩니다. 소설을 통해 하늘의 길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작업은 참 중요합니다. 잘 쓰시길 바랍니다.

진행 서화숙 여론독자부장 hssuh@hk.co.kr

정리 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김수환

1922년 대구생. 51년 서울가톨릭대 신학부를 졸업, 사제서품을 받고 안동천주교회 주임신부, 가톨릭시보 사장, 마산교구장을 거쳤다. 68년 서울대교구장, 69년 추기경에 오른 뒤 역사의 고비마다 원칙에 충실한 말과 행동으로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져왔다. 97년 북한동포돕기 100만명 서명운동을 주도하는등 최근 들어 인도적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그는 지난해 6월 서울대교구장직에서 은퇴했다.

●최인호

45년 서울생. 63년 서울고 2학년 때 단편「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했고 67년 「견습환자」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72년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별들의 고향」「바보들의 행진」「깊고 푸른 밤」「겨울나그네」 「길없는 길」 「사랑의 기쁨」등의 소설을 펴냈다. 87년 가톨릭에 귀의(세례명 베드로)했으며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가톨릭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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