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헌금의 횡령사건 수사에서 은행계좌 하나가 나온 것에서 모든 일은 비롯됐다. 그런데 그 계좌는 16년간 독일의 총리였던 헬무트 콜(69·사진)이 25년간 이끈 기민당의 12개 비밀계좌 중 하나였다. 「통일의 영웅」 콜은 의회 청문회 출석은 물론이고 이번주내 검찰에 소환될 가능성도 높아졌다.일간지 쥐트도이체 자이퉁은 8일 기민당이 독일의 「월스트리트」인 프랑크푸르트의 한 은행에만 비밀계좌 17개를 갖고 있다고 폭로했다.
검찰은 또 11월초 91년 당시 기민당 재정국장이던 발터 라이슬러 키프가 100만마르크(6억원)을 횡령했다는 혐의에 대한 내사에 나섰다. 이 돈은 독일의 방산업체 티센의 딜러가 키프에게 준 돈으로 밝혀졌고 자금추적 과정에서 기민당의 비밀계좌가 드러났다.
딜러는 『스위스 주차장에서 키프에게 돈을 전달했다』며 『정부가 티센의 탱크 36대를 사우디아라비아에 팔 수 있도록 허가한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보도됐다. 주차장, 돈 전달, 비밀계좌 등 음습한 요건을 모두 갖췄다.
콜은 처음에는 모든 것을 부인하다가 지난달 30일 『만약 이같은 일이 정당법을 위반한 것이라면 유감』이라고 비밀계좌의 존재를 시인했다. 콜은 그러나 『16년 총리 재임중 개인적 뇌물은 단 한푼도 받지않았다』고 강조했다. 비자금은 있었지만 정치자금이었을뿐 뇌물이나 대가성 자금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98년 콜을 꺾고 정권교체를 이루었으나 올해 지방선거에서 연전연패하고 있는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즉각 이를 정치쟁점화시켰다.
당내 반란이 점쳐지기도 했던 7~9일의 사민당 전당대회에서 슈뢰더는 『그들은 국가를 부도위기로 내몰았고 단지 만든 것은 자신들의 비자금 계좌』라고 몰아쳤다. 콜과의 차별성으로 바람몰이를 한 덕에 슈뢰더는 쉽게 총재에 재선됐다.
콜은 11월30일 성명이후 말을 아끼고 있지만 「콜의 아이들」인 기민당 지도부는 로비자금이 사민당에도 들어갔다는 정보를 흘리고 있다. 티센이 국회 예산위와 국방위 소속 의원에게 여야 가릴 것없이 돈을 주었다는 것이다.
통독을 이룬 대정치가 콜은 「밝히기 어려운 통치자금」이라는 자세를 취하고 있고 반대쪽에서는 「뇌물」이라고 비난하는 형국이다.
신윤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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