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의 외환위기로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협정을 맺은지 벌써 2년이 되었다. 아직도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우리 국민과 정부의 노력으로 이제 위기 상황은 일단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97년 위기의 원인과 그 사후 처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97년 위기의 원인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특히 위기 초기에, IMF를 비롯한 외국인들,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 원인을 지나친 정부 개입과 기형적인 재벌 체제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자본주의 체제의 제도적 결합에서 찾았지만, 이제는 점차 이러한 시각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한국 고유의 국가 주도형 경제구조는 이미 김영삼정부하에서 자유화의 구호하에 대부분 해체되었으며, 따라서 지나친 국가 개입에서 97년 위기의 원인을 찾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이다.
IMF 위기는 지나친 정부 개입 때문이 아니라 금융 규제의 미비 등 지나친 자유방임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재벌의 경우는, 필자가 본란(10월 7일자)을 통하여 주장한 바와 같이, 이들이 영미계 기업들과 다르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들을 「기형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최근 들어서는 미국 MIT의 크루그만(Paul Krugman)교수 등 아시아 위기의 원인을 아시아 국가들의 제도적 결함에서 찾는데 선봉적 역할을 했던 사람들 마져도 아시아 위기는 국내적 제도의 결함보다는 세계 자본시장의 불안정성과 국내 금융 규제의 미비에서 찾아야 한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 정확한 원인은 어떻든 간에, 97년 위기의 처리 과정을 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첫째로, 최근 서울에서 개최된 IMF 2주년 결산 세미나에서 세계은행(IBRD)의 스티글리츠 부총재도 지적했지만, IMF의 지나친 고(高)이자율 정책은 높은 단기 부채비율 때문에 생긴 단기적인 유통성 위기를 불필요하게 증폭하여 건정한 기업까지 도산케 하고 비정상적인 실업을 발생케함으로써 우리 경제를 멍들게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IMF의 거시 경제정책의 실패가 명백히 드러고 있다.
둘째로, IMF가 요구한 일련의 제도 개혁들은 우리 경제의 위기가 근본적으로 제도적 결합에 기인한 것이며 따라서 우리 제도를 영미식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그 앞날이 어둡다는 인식하에 행해졌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경제의 제도들이 흔히 주장되는 것처럼 「기형적」인 것도 아니며 이들이 지난 40여년간 고도 성장과 비교적 균등한 소득 분배를 낳는 데 큰 공헌을 했던 제도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위에서 지적한 대로 97년 위기의 원인은 우리 제도의 결함보다는 국내외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과 근시안성 때문에 벌어졌다는 것이 다시 한번 지적되어야 한다.
특히 유의하여야 할 일은, 지금 미국의 호황을 등에 업고 「최고의 제도」로 선전되고 있는 영미식 제도들은 바로 10여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영미계 국가들의 상대적 쇠락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제도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97년 IMF 협정은 우리 경제와 사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우리 국민이 IMF의 잘못된 정책으로 불필요하게 커다란 고통을 겪은데 대한 장기적인 보상은 우리가 이 사태에서 올바른 교훈을 도출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무조건 영미식 제도를 모방하려 하기 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폭 넓은 토론과 실험을 통해 우리 제도들 중에서 보존해야 할 것, 수정해야 할 것, 그리고 과감히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장하준·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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