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영화에서 키스신을 촬영할 때는 얼굴을 엇비켜 부딪치는 방법으로 입술의 접촉을 피했다. 사실성이 떨어졌지만 그때는 관객조차도 그런 방식에 익숙했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표현의 폭이 넓어지면서 키스신은 물론 베드신도 상당히 대담해졌다.80년대에는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보고는 찍겠다고 했다가 막상 현장에서 『못찍겠다』고 버티는 경우가 있었고, 예상보다 배우의 몸이 「빈약해」 상업성을 위해 대역을 쓰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엔 대역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섹스신도 연기인데 다른 사람을 시키는 것은 배우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 때문이다.
감독의 지명도가 있을 경우 비교적 섹스신은 수월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창」 「태백산맥」의 임권택 감독의 경우, 포즈는 물론 손 움직임까지 자세히 지도를 해주면서 배우들이 일반 연기와 마찬가지로 정사장면에 몰입하도록 배려해주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아무리 감독이 지도한다 해도 연기는 배우의 몫. 「창」에서는 신은경이 창녀촌에 처음 들어간 대목 4분을 위해 무려 9시간을 찍어야 했다.
베드신 촬영 때는 통상 30명 내외의 스태프가 모두 현장에서 철수하고 배우와 감독, 촬영기사 등 반드시 필요한 5-10명의 인물만이 현장에 들어간다. 섹스신에서는 신체의 은밀한 부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가제나 살색 테이프로 부분을 철저히 가린다. 관객들이 보기엔 군침 넘어가는 에로틱한 장면이라도 사실 촬영 현장 분위기는 상당히 긴장돼 있고 엄숙하다. 연기외 다른 감정이 개입될 소지는 거의 없다.
시대가 변하면서 베드신에 임하는 배우들의 자세도 세대간 차이가 뚜렷하다는 게 영화제작자들의 설명. 주말 개봉하는 「해피엔드」와 「세기말」은 둘 다 섹스신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 「해피엔드」에서 첫사랑 주진모와 유부녀 전도연의 정사신은 스태프가 모두 철수한 가운데 두 주연배우와 촬영기사, 정지우 감독만이 현장에 있었다. 3번 촬영을 했는데 전도연은 촬영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흥행공주」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이제 스타로 성장한 전도연이지만 전라의 연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다.
반면 옴니버스 영화인 「세기말」의 「무도덕」 챕터 촬영. 이호재와 이재은의 정사장면에서는 송능한 감독이 대략적으로 장면 전개과정을 설명한 후 촬영 조명 스크립터 등 7, 8명의 스태프가 현장을 지켜보았다. 단번에 촬영이 끝났을 정도로 이재은은 담대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70, 80년대 출생 배우들은 머뭇거림이 없다. 이 연령층의 관객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30, 40년대 배우나 관객들이 더 쑥스러워하고 이상해 한다』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신세대가 아니라 구세대란 뜻일까.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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