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을 최초로 시작했던 서양화가 고(故) 신영헌(1923-1997)의 회고전이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17일부터 24일까지 열린다.50년대부터 뛰어난 묘사력으로 살바도르 달리 풍의 초현실주의 그림만을 일관되게 그려왔던 신영헌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국내 화단에서 드물다. 서울대 미대 출신으로 월북화가 이쾌대의 수제자였던 그가 확고한 예술세계를 개척해왔으면서도 베일에 쌓여있는 것은 당시 화단에서 「가당찮은 모험」으로 간주돼 온 초현실주의 작품에만 평생 집착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를 마련한 제자 권영호씨는 『당시 정치적 성향이 강하지 않았던 작가들은 모두 아웃사이더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하지만 국내 초현실적인 작품에 미친 선구자적 역할은 확실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이번 전시회가 그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초현실주의 작품을 가능케 했던 신영헌의 세밀한 소묘실력은 정평이 나, 당시 많은 미술학도들이 그의 소묘를 배우기 위해 화실을 찾기도 했다. 그는 달리처럼 편집광적인 사람은 아니었으나 너무 종교적으로 밀착, 결합한 그림이어서 미술계 일부에선 초현실주의의 본질에 도달하지 못한 그림이란 평가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화단과 고립시킨 채 40여년간 뜨거운 열정으로 고독과 싸워온 작가의 「꿈의 세계」는 우리 미술사에서 다시 조명받아도 손색없을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바다의 비화」 「모정은 산하를 누비고」에 나오는 여인의 치맛자락 휘날리는 모습은 처절하다. 또 평양 대동교의 파괴와 죽음, 전쟁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대동교의 비극」도 대표작. 평생 돈에는 무관심한 채 생애 두 번의 개인전만을 가졌다. 지독한 가난과 고독 속에서도 그림만을 붙들고 살았던 한 예술가를 되돌아볼 수 있는 자리다.
/송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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