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이름이다」라는 첫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80년대 중반의 군사정권 아래서 한 작가가 시인 김지하(金芝河·58)씨에 대해 쓴 인터뷰 기사였다. 기사처럼 「김지하」라는 이름은 사회적으로 큰 울림을 지녀 왔다. 최근 그가 필명을 버리고 본명인 「영일(英一)」을 쓰겠으며, 「노겸(勞謙)」이라는 호로 불리면 좋겠다고 밝혔다. 필명이 어두운 느낌을 준다는 충고가 많아서, 아버지가 물려준 「꽃 한 송이」라는 의미의 본명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문건」과 관련된 여러 사건들로 이름과 명예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때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성명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해 왔다. 미국인 일본인 등과는 달리 여자들은 결혼 후 친가의 성(姓)을 유지해 왔으며, 선친이나 임금의 이름이 있는 글에서는 그 부분을 읽지 않고 지나가는 기휘(忌諱)의 관습도 지켜왔다. 근래 일부 여성이 「아버지·어머니 성 함께 쓰기 운동」을 전개하는 것도 페미니즘에 대한 각성·계몽과 함께 이름에 대한 애착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김씨의 본명으로의 회귀는 뜻밖이다. 이는 지금 그가 몰입해 있는 「율려(律呂)운동」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어두운 이미지의 필명을 버리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가 주축이 된 율려운동은 단군사상에 바탕을 둔 상고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다. 시인의 이런 변화에는 새 천년을 맞는 지구촌의 희망적 분위기도 고려된 듯하다. 그러면서도 「오적」으로 대표되는 저항적 시인의 이미지를 너무 멀리 떠나는 것 같아 서운하다.
■그의 후배 시인 황지우씨는 『친구 김정환(시인)이 타이프를 잘못 쳐서 「재우」가 「지우」로 됐는데, 그후 그대로 쓰고 있다』고 한다. 그는 또 『내 이름은 김지하의 「지」자에, 양성우(시인)의 「우」자를 합쳐 놓은 것』이라고 농담한 적도 있다. 고려 승려 지눌은 「하나의 법이 천 가지 이름을 가진 것은 인연을 따라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김지하」가 바뀌었으니 「황지우」도 바뀔 것인가.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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