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 신라의 경험, 억지로 쟁취한 권력이 걸어간 길. 이 역사적 경험들은 세기말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나?역사를 모티프로 한 연극들이 이번에는 중견 배우들을 만났다. 지난 여름, 「찬탈」 「화무십일홍」 등 사실(史實)을 소재로 젊은 연극인들이 펼쳐 보였던 일련의 재기발랄한 해석과는 다른 차원이다. 역사 그 자체의 재현에 우선권을 둔다. 관객들로서는 원숙한 연기를 통해 역사를 재음미한다는 즐거움이 있다.
한국사 최초의 통일 국가, 신라는 삼국통일을 위해 어떤 일들을 겪어야 했나? 극단 완자무늬의 「옴」이다.
원효가 구해 올 금강경이 민심을 한 데 묶을 최선의 방책이라 여겨, 그를 학수고대하던 김춘추. 그러나 원효는 당으로 가던 도중 「일체유심조」라는 대각(大覺)에 이른다. 극은 원효가 현실적 포부를 떨치고, 민중 속으로 들어가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김춘추와 원효 사이에 벌어지는 목숨을 건 싸움이 볼거리. 원효의 대각을 이해할 수 없었던 현실 정치인 김춘추는 회유와 협박을 벌이다, 종내는 그를 살해하려고까지 한다. 둘의 갈등은 현란한 무대 조명, 또는 사물놀이 실연 등의 방식으로 구체화한다. 한재석, 이준우 등 각종 사물놀이 경연대회 우승자들로 이뤄진 사물놀이패 한울림의 연주가 무대의 긴박감을 더해 준다. 이하륜 작, 김태수 연출에, 권성덕 조상건 김지숙 등 중견들이 출연한다.
범어(梵語) 「옴」이란 본디 출생과 더불어 시작하는 완성의 길, 또는 공양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인간사의 원리를 파악하게 하는 혜안·통찰·사랑 등을 뜻한다. 서양화가 최준걸씨가 공연에 맞게 자유롭게 그려 기증한 그림 10점이 공연장 홀에 전시돼 독특한 감흥이 감돈다. 12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월~토 오후 4시 7시30분, 일 오후 3·6시. (02)765_5475
『흔히들 그래왔듯 인조를 반정의 수괴로, 포악하게만 그리는 데서 벗어나려 애썼다』 인조역 이호재의 말대로, 극단 실험극장의 「조선제왕신위」는 인조반정에 대한 재평가 무대다. 반정의 인조에서 북벌론의 효종까지, 370년전 격동의 시간이 무대에 재구성된다.
임금으로서 최대의 수모인 삼배구고두례(큰절을 세번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신하의 예)를 치르고 즉위한 인조에게는 청나라야말로 철천지 원수였다. 그러나 볼모로 보냈던 장남 소현세자가 청나라의 선진 문물에 흠뻑 젖어 개혁주의자가 된다. 조선왕조실록은 귀국 한달만에 학질로 죽었다고 돼 있으나 작가 차성우씨는 이후의 연구를 종합, 독살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인조가 극의 주인공으로 나선다. 1막 무대밑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올라온 인조가 2막을 통해 자신이 걸어 온 피의 역사를 본다. 3막에서는 효종의 강경북벌론이 신하들과 사사건건 충돌을 빚다, 효종이 드디어 형 소현세자를 독살하게 된다. 이 과정을 힘없이 쭉 지켜보던 인조, 아들 소현세자의 독살자를 위한 사관의 씻김굿 한판으로 무대는 대미를 준비한다. 맨 마지막 장면. 인조가 사관과 함께 영계로 들기 전, 마지막 미련처럼 뒤를 돌아다 본다. 거기, 소현세의 실루엣이 용상에 나타난다.
이호재를 비롯, 강태기 이승호 원근희 등 실험극장의 「에쿠우스」에서 앙상블을 이뤘던 배우들이 협연한다. 차성우 작, 윤우영 연출. 17~26일 문예회관대극장, 오후 4·7시. (02)764_5262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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