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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한국스포츠20대사건] (2) 손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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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한국스포츠20대사건] (2) 손기정

입력
1999.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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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파시즘과 인종주의가 점령한 베를린 하늘에 일장기가 올라가고 기미가요가 울려퍼지는 동안 그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월계수관속에 눈을 감추었고 가슴에 달린 일장기는 월계수로 가렸다. 그는 껍데기인 「기테이 손」이 되기를 거부했다.1936년8월9일 한국스포츠사에 기념비적인 올림픽 마라톤 제패를 이룩한 「비운의 마라토너」 손기정.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는 다른 일장기를 가슴에 단 모순속에 생애 최고의 순간에 역설적으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과 동메달리스트 남승용의 고개를 떨군 모습은 32년뒤인 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항의, 고개를 떨구고 주먹을 불끈 쥔 채로 육상남자 200㎙시상대에 오른 미국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로 이어진 듯한 느낌마저 든다.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당시 유력한 우승후보는 아르헨티나의 자바라. 그는 중반 페이스 오버로 30㎞지점에서 기권하지만 이 역시 끈질기게 따라붙는 손기정의 근성이 빚어낸 결과였다. 손기정은 30㎞이후 선두로 나서지만 2위에 있던 영국의 하퍼와 치열한 레이스를 펼쳤다.

하퍼는 자바라가 초반질주로 멀찌감치 앞서나갈때 손기정에게 「슬로우 슬로우」를 외치며 페이스조절을 충고하며 스포츠맨십을 발휘한 영국신사다.

하지만 승부는 냉혹한 것. 결국 손기정은 하퍼와 치열한 접전 끝에 결국 2시간29분19초2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한국인으로는 첫 올림픽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승용 역시 중반까지 30위권에 머물다 후반 놀라운 역주를 거듭하며 2위 하퍼에 불과 19초 뒤진 2시간31분42초로 동메달을 차지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이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시를 통해 「침울한 어둠속에 짓눌렸던 고토(故土)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炬火)를 켜든 것처럼 화다닥 밝으려 하는구나」라고 노래할 정도로 마라톤우승은 제국주의 폭압에 눌린 조선민중에게 통렬한 감격과 민족적 희망을 안겨주었다.

24세의 대한남아가 이룩한 쾌거는 보름뒤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절정에 이른다. 동아일보 체육부 이길용기자는 이상범화백에게 부탁, 마라톤우승후 보름뒤 도착한 손기정의 시상식사진에서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운채로 윤전기를 돌리는 거사를 감행했다.

제국주의 일본의 강점에 대한 민족적 울분을 토해낸 의거였고 이사건으로 이길용기자 등 다수의 기자가 구속되고 동아일보는 무기정간처분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손기정의 올림픽 제패괘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반세기동안 한국 마라토너들에게 꿈이요 목표요 화두로 남았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속에서 베를린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꿈은 비단 손기정뿐만 아니라 국민적인 염원이요 희망이었다.

손기정의 바람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에 의해 무려 56년만에 달성됐고 손기정은 이때 『죽어도 한이 없다』며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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