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만원! 돈만 날렸다. 춤타래무용단의 「우리 아버지-심청 99」(1·2일 문예회관 대극장)는 IMF 이후 잔뜩 쪼그라든 공연예술을 지원하기 위해 문화관광부가 긴급수혈한 20억원 중 무용 분야로는 가장 많은 8,000만원을 받은 작품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형편없는 졸작이 됐다.심청 이야기를 줄줄이 헐렁하게 풀어놨을 뿐, 정작 춤이 없다. 움직인다고 다 춤인가. 그건 볼품없는 마임극 수준이었다. 서툴지만 뿌듯함이 있는 어린이들의 학예회만도 못했다. 무대에 돈 들인 흔적도 찾기 힘들다. 연꽃잎 몇 장 세워놓고, 공중에 비녀를 걸어 천 한 장 걸치고, 용궁 장면에서 바닷속을 표현하는 배경판을 세웠을 뿐인 초라한 무대였다. 안무(김말애)는 상상력 결핍의 표본같다. 이 작품은 공연예술 특별지원금이 과연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의심케 한다. 문예진흥원은 문화관광부의 위임으로 3월 15일부터 신청을 받고 4월 30일 최종심의를 거쳐 지원대상을 선정했다. 무용 9, 음악 21, 연극·뮤지컬 16개 단체가 그 돈을 받았다.
12월 15일까지 공연한다는 조건이다. 기한이 닥침에 따라 지난달 말부터 대형 춤판이 줄을 잇고 있다. 꼭 밀린 숙제하는 꼴이다. 갑자기 돈을 주면서 몇 달 안에 공연하라고 한 지원 방식부터가 문제다. 오래 전부터 준비한 작품이 아니면 졸속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공연이란 게 어디 암탉이 알을 낳듯 삽시간에 뚝딱 되는 일인가.
다른 작품은 어떤가. 5,000만원의 지원금을 탄 발레블랑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11월 30-12월 1일 국립극장 대극장)를 봤다. 메테를링크의 원작 희곡은 신비스런 느낌의 상징주의 걸작이다. 멜리장드는 남편 골로를 두고 시동생펠레아스와 사랑에 빠진다. 사랑과 질투, 죽음과 후회의 드라마이지만, 통속적인 냄새는 전혀 없다. 모든 사건은 마치 꿈 속처럼 전개되고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윤라의 안무는 원작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바람난 유부녀의 참회극처럼 끝나버렸다. 골로가 펠레아스를 죽인 뒤 멜리장드의 긴 솔로를 붙인 것은 군더더기가 됐다. 전반적으로 고전에 도전한 의욕에 못미치는 무대였다. 다만, 주인공들의 심리상태를 군무로 펼쳐보인 아이디어는 참신했다. 세 주인공 중에는 골로를 맡은 이원국의 춤이 홀로 빛났다.
음악 쪽에서는 합창 4, 실내악 4, 관현악 6, 오페라 7 등 총 21건이 특별지원금을 받았다. 그중 강화자베세토오페라단이 7월에 공연한 오페라 「상해임시정부」는 1억 2,000만원이나 받고도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나랏돈을 그렇게 허비하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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