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빚(국채)을 빨리 줄여 자손들에겐 짐을 주지 말자는 「재정건전화 특별법」이 출항도 하기 전에 좌초위기에 놓였다. 국회일정상 서둘러도 모자랄 판에 의원입법 당사자인 여당은 『반론이 많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연내, 아니 15대 국회에서 법 제정은 물건너간 셈이다.여당의 반론골자는 추경편성을 규제하는 이 법안이 만들어지면 재정정책의 손발이 묶여 경제여건 변화에 탄력적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것. 『적자재정 조기해소를 위해서라면 정부가 긴축의지를 천명하고 실천하면 그만이지, 굳이 법까지 만들 필요는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법의 추진배경을 한번 되새겨보자. 재정적자란 본질적으로 줄이거나 없애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법을 통해 강제적으로라도 규제하려했던 것이다. 미국은 적자재정에 발을 담근 후 벗어나는데 29년이 걸렸고, 일본은 30년이 되도록 만성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국민들로부터 세금은 덜 걷고 지출은 늘리는 것 만큼 확실한 인기전략도 없다. 따라서 적자재정은 집권세력에겐 「꿀맛」이 아닐 수 없다. 이 유혹을 포기해야하는 긴축은 정권 차원의 도덕적 결단 없이는 결코 말처럼 쉽게 천명할 수도, 실천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적자재정은 빚으로 잔치상을 차리고, 잔치값은 후손이 물으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권의 특별법 포기는 건전재정 보다는 눈앞의 인기가 먼저라는 뜻으로 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부끄러운 시대에 후세에 많은 유산은 물려주지 못할 망정, 빚더미를 안겨줄 수는 없지 않은가.
경제부 이성철기자
sc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