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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21세기엔 '문화강국'으로 - 황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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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21세기엔 '문화강국'으로 - 황태연

입력
1999.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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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사람들은 수백년동안 문화민족으로 자임해 왔으면서도 동시에 문약(文弱)하다고 자책해 왔다. 학문을 숭상하고 주변국의 문화와 종교를 앞장서 배우고 선비정신과 인정(人情)을 바탕으로 삼는 민족성이 지나쳐 전통적으로 문반을 우대한 반면, 무반을 하대시하고 강군 양성에 소홀했다는 것이다.사실 우리 문화 속에는 숭무(崇武)정신과 군사문화가 들어설 자리가 매우 비좁다. 이런 문약의 전통에 대한 비판과 자책 속에서 자주 거론되는 사실은 조선이 이율곡 선생의 10만 양병론(養兵論)을 무시하고 임진왜란 때 크게 당한 역사적 경험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의 체질화된 숭문(崇文) 성향에 긍지를 느끼면서도 때로 문약을 자책하고 강병(强兵)과 군사문화를 동경하다가 한 때 군사쿠데타까지 용인하는 가치혼란에 빠져들기도 했다. 한국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붓의 문화」이면서도 반성적으로는 칼에 대해 열등의식을 느끼는 문화였던 셈이다.

이에 반해 일본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사무라이의 무사도정신을 숭상하고 할복을 칭송하는 「칼의 문화」이다. 밖에서 보고 있노라면 이 「칼의 문화」는 아직도 일본 문화의 심장부를 관통하고 있는 것 같다.

옷 로비사건이나 언론문건 폭로사건과 같은 짜증나게 하는 사건이 일본에서 일어났다면 아마 서너 사람이 할복하는 것으로 일찍이 막을 내렸을 것이라는 양국간 정치문화적 비교는 상당히 의미 있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대체로 잦은 칼싸움과 지진의 영향으로 생겨난 일본의 이 「아싸리 문화」를 징그럽고 인정머리 없는 문화로 느낀다. 한국의 문화적 바탕은 어디까지나 문예와 평화를 애호하고 선비정신을 칭송하는 「붓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붓의 문화」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마음 한 구석에 늘 문약성에 대한 자책과 함께 강병이 미비함을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은 주변국의 이런 「칼의 문화」에 시달려온 쓰라린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만약 주변국이 우리처럼 문예와 평화를 애호하는 나라들이었다면 문약에 대한 우리의 자책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서양은 봉건시대 「칼의 문화」로부터 근대화와 더불어 학위를 가진 지식인들이 「펜의 자유」를 외치며 사회의 각 부문을 지배하는 「펜의 문화」로 바뀌어 왔다. 또한 이것은 200년동안 세계사의 대세이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문화의 심장부에 아직도 「칼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문화적 낙후성의 징표일 것이다. 정치지도자와 소설가에서부터 깡패인 야쿠자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칼을 숭상하고 할복을 당연시하는 문화는 분명 반시대적이다.

세계는 21세기를 향해 다시 급격히 변하고 있다. 세계문명은 공업·군사력·물질 우위의 시대에서 지식·정보·문화 우위의 시대로 변동하고 국제정치는 군사력, 전쟁, 동맹, 안보 등이 우선시되는 「고순위 정치」에서 경제협력, 문화협력, 환경협력, 정보네트워크, 인권과 평화가 강조되는 「저순위 정치」로 변하고 있다.

따라서 21세기는 「펜의 문화」와 「붓의 문화」가 바탕에 깔린 나라들이 두각을 나타내게 되어 있다. 칼을 마우스로 바꾸는 것보다 펜과 붓을 마우스로 바꾸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중국은 21세기의 발전에 적합한 문화적 저력을 갖춘 국가이다. 한국 국민도 21세기에 「준비된 민족」이다. 이제 우리의 「문약」은 오히려 「문강(文强)」으로 반전될 것이다. 따라서 새 천년에는 문약을 자책하거나 「칼의 문화」를 동경할 이유가 전혀 없다. 21세기의 지식·정보·문화 시대에는 숭문(崇文)의 전통을 가진 우리 나라가 「칼의 문화」를 가진 나라만큼은 분명 어렵지 않게 추월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황태연·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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