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일본의 한 젊은 기사가 한국에서 열린 국제기전 결승전에서 바둑돌로 바둑판을 땅땅 두드리는 듯 거칠게 착수를 해서 매너 없는 행동이라고 빈축을 산 일이 있지만 『그래도 바둑은 역시 바둑판 두드리는 맛』이라는 바둑팬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어쩌면 머지 않은 장래에 대부분의 바둑동호인들이 「바둑판 두드리는 맛」을 잊어 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최근 사회 각 분야를 휩쓸고 있는 인터넷 열풍에 힘입어 컴퓨터 통신을 이용한 사이버 바둑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천리안, 하이텔, 유니텔, 나우누리 등 국내 4대 통신에 각기 2만여명의 바둑 동호인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세계에서 하루에 수만 명 가량이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 수담(手談)을 즐기고 있다. 과거 바둑판 시절에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 바둑의 가장 큰 매력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 오늘날 바둑이 과거에 비해 인기를 잃어 가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다. 너나 할 것없이 꽉 짜여진 스케줄 속에서 한 판의 바둑을 즐기기 위한 적당한 시간과 장소, 그리고 적당한 상대를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이버 바둑은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이다. 퇴근후 집에 돌아와 편한 자세로 느긋하게 맥주 한 잔을 즐기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바둑 친구와 수담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바둑팬 들로서는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다. 게다가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대국 후 복기와 기보 작성 등 고단자가 아니면 제대로 하기 어려운 작업까지 간단히 처리할 수 있으며 장차 상대방의 동영상 및 음성까지 생생하게 보고 들을 수 있어 실제 대국하는 것과 똑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된다고 하니 금상첨화다.
사이버 바둑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인터넷을 통한 각종 사이버 바둑 대회가 앞을 다투어 창설되고 있으며 한국기원은 주요 대국 실황을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하고 바둑 웹진 발간도 추진하고 있다. 또 국내 10여개 인터넷 바둑 서비스 업체들도 리얼타임 바둑계 소식은 물론 사이버 바둑 박물관, 사이버 바둑 강좌, 사이버 지도 다면기, 사이버 기력 측정 등 다양한 바둑 관련 사이트를 개설하는 등 사이버 바둑 산업이 대활황을 맞고 있다. 문필가의 책상 위에서 원고지와 만년필이 사라졌듯이 기원에서 바둑판과 바둑돌이 사라질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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