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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와 여유로 꽃피운 사교문화 하이덴-린쉬 '유럽의 살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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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와 여유로 꽃피운 사교문화 하이덴-린쉬 '유럽의 살롱들'

입력
1999.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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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이라는 말 앞에 「뷰티」 「슈즈」 「룸」이라는 말이 붙는 것은 한국만의 일이다. 그러니까 한국의 살롱(Salon)은 여성의 몸치장, 멋을 위한 공간이거나 막연히 서양 문화의 냄새가 짙은 곳이라는 뉘앙스를 지닌다. 여성과 술과 음악이 있는 향락적인 장소라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살롱이 생겨서 번성한 100여 년 전 프랑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아름다움과 지혜를 두루 갖춘 한 여성을 중심으로 내로라하는 당대 지성들이 드나들며 문학과 사상에 취한 격조있는 사교 공간이었다.독일 출판인 하이덴-린쉬가 쓴 「유럽의 살롱들」(김종대·이기숙 옮김, 민음사 발행)은 이런 「살롱문화」의 역사를 좇은 책이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마당 드 랑베르, 드 탕셍, 조프렝, 뒤데팡,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마당 드 장리스, 드 슈탈, 레카미에. 그리고 프로이센과 바이마르, 영국,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 전역에서 이런 형태의 문학 낭독의 밤, 카페가 열린 풍경을 살폈다.

예의 갖춰 차려 입은 남녀들은 말하는 사람의 천재성에 흠뻑 젖어들고 듣는 이 가운데 누군가가 기지에 찬 응대를 하는 것을 보며 즐거움에 빠진다. 그들의 대화는 일정한 예식, 세련미와 교양에 바탕한 몸에 밴 처세가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모임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 즉 살롱 주인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이다. 지은이는 『살롱은 궁정사회의 가부장 원칙에 대항해 모권이 지배한 곳이었고 여성이 만들고 여성이 이끌어감으로써 남성사회의 문화제도와 현격한 거리를 두는 자유의 공간이었다』고 지적했다.

아쉽게도 버지니아 울프의 목요회 정도를 마지막으로 살롱은 사라지고 말았다. 여성의 지위가 바뀌고 그들이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이 바뀐 것도 적지 않은 이유지만 지은이는 특히 실용에 국한한 사교 형태들이 범람한 데서 원인을 찾고 있다. 『재치 가득한 대화의 실험실을 차리기 위해 어디에서 시간을 짜내고 어느 곳에 장소를 마련한단 말인가?』 현대는 고급한 향락을 위한 「한가함」을 잃어버렸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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