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기전에 3일치 식량을 준비합시다」 미 연방재난관리청에서 국민들에게 알리는 31쪽짜리「Y2K and You」라는 홍보 계몽 책자에 나오는 개인적 Y2K 대비 요령이다. 우리나라 정부에서 국민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얼마 전 내놓은 4쪽짜리 국민Y2K 대처요령에는 이런 구체적인 지침은 찾아 볼 수가 없다.단지 Y2K로 인해 큰 장애는 발생치 않을 것이니 Y2K 대비용 식량준비는 필요 없으나, 평소에도 꼼꼼한 사람은 자동차열쇠를 두 개 이상 몸에 지니고 다니듯이 혹시 불안해 하는 사람들에 한해서 Y2K와 무관하게라도 비상 물건들은 각자 알아서 준비하면 좋겠다는 내용은 들어있다.
평소 Y2K에 좀 신경을 쓰는 편이라 다른 나라에선 어떻게 대국민 메시지가 나가는가 봤더니 그래도 Y2K 대비가 아주 우수하다는 캐나다나 호주에서는 역시 30쪽 분량의 상세하고도 친절한 Y2K 대국민 안내서는 배포되었으나 3일치 식량에 대한 구체적 지적은 전혀 없었다.
미국이 3일을 지칭한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미국의 기간산업부문의 Y2K 준비상황을 거의 1년간에 걸쳐 집요하게 수시 청문회를 통해 추적 및 관리해온 상원의회 Y2K 대책위원장인 로버트 베넷이 국민들에게 약속하기를 1월 1일에 혹시라도 전기나 통신 등 국가 기간 산업부문에서 발생할 장애의 규모를 막론하고 무조건 72시간 내에 틀림없이 해결하겠다고 공언한 바에 기인한다.
한편 일부 다른 나라에선 이 복구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 예상된다는 지적도 언급했다. 이것을 대통령 Y2K 특별위원회와 연방재난관리청에서도 그대로 수긍하고 있는 상황이다. 10년 전부터 Y2K를 대비해왔다는 나라치고는 너무 엄살이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Y2K는 이제 다 끝난 것 아니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Y2K는 국가, 기업, 가정차원의 위기 관리의 대장정이기 때문에 흡사 마라톤에 비유할 수 있다. 마라톤 풀코스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라면 완주할 사전 준비로서 적어도 시합전 2달 동안은 매주 2회 30km 완주를 소화해야 한다.
출전을 앞두고 마라톤 완주 준비를 이제 겨우 끝낸 선수에게 마라톤 시합이 다 끝났냐고 묻는다면 맞지 않듯이 Y2K는 끝난 것이 결코 아니고 이제 막 경기시작 신호탄 총성이 울리기 며칠 안 남은 상태임을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그러니까 Y2K는 42km 대장정 속에서 이제 초반 5km정도 왔다고나 할까.
세계적인 Y2K 최고 경영자문기업인 가트너그룹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0년이 아니고 2001년 1월 1일에 가서야 지구상의 전체 기업의 불과 60퍼센트만이 비로소 Y2K 해결률 100%에 성공하리라는 예측이 나온바 있다.
요즈음 각국 정부가 발표하는 완료율 100%는 해결률을 나타내는 것이 결코 아니고 준비에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준비율 100%임을 가르키는 것이다. 2000년 1년 내에 완주에 결국 실패할 기업이 무려 40%라는 뜻이다. 마라톤에서 준비가 아주 잘된 선수도 완주 실패율이 보통 15% 정도되니까 Y2K 역시 1년 내에 어느 국가든지 모두 완주해낸다는 낙관론은 원천적으로 성립 불가능하다.
풀코스 완주에 실패하는 지점은 대개 30km 전후한 곳이다. 온 몸 각 부위에 예상치 못했던 위기가 엄습하는 이 시점에서 주법을 바꿔서라도 위기를 감당해내지 못하면 그대로 낙오자 대열에 끼게 되고 만다. 온갖 부상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트너의 선지자적 메세지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어느 나라에서도 기간 산업 부문의 최소한 15%까지는 좌우간 오작동될 가능성이 확실시된다. 가트너의 미국상원의회 증언도 실제로 그렇다. 미국에서는 그래서 가트너의 지적에 귀를 기울이고 Y2K 특별비서관에 컴퓨터전문가 대신 신중하게 위기관리 전문가인 존 코스키넨을 임명했다.
2년 전에 임명되어 내년까지는 임기를 성공적으로 채울 듯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Y2K 사령관격에 해당하는 정보통신부 Y2K상황실장을 1년 만에 최근 인사이동시킨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유엔본부산하의 Y2K국제협력단장인 브루스 맥커넬 역시 위기관리 전문가 출신이다.
Y2K는 인류에게 너무나 큰 교훈을 주고있다. 아직도 그러나 Y2K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컴퓨터에 숙지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일반인에게는 정보화에 얽힌 선작용과 부작용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기회가 되었다. 정보화가 중요하다고 늘 부르짖던 정보기술분야 인력들은 그 동안 기술자로서 찬밥 대우 받다가 이제는 막중한 임무수행 인력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됐다.
미국상원의회 Y2K 증언석상에서도 어느 장관이 지적하기를 정보화 예산 따기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했다는데 이는 정보화의 필요성을 구태여 남이 잘 알아듣게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공감대 형성에 Y2K가 크게 기여했다고 보여진다. Y2K가 미국에서는 요즈음 You Too Know(이젠 다 아시죠)로 통한다고 한다.
기간 산업중 우려되는 부문은 어느 나라든 전기와 통신이다. 발전에 차질이 생기면 통신도 원활치 못하게 되고 통신장애 요인들이 하나 둘 쌓이게 되면 연쇄적으로 발전시설도 6시간 내에 가동 중지될 가능성이 확실시된다는 미국 에너지부 고위 전문가의 증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전기와 통신이외의 Y2K장애는 혹시 발생하더라도 모두 견뎌낼 만한 것이다. 핵미사일 오작동, 항공기 작동장애, 은행 계정 관련 오류 등은 모두 기우일 뿐이다.
Y2K문제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과장해서는 아니되지만 전문가들은 Y2K란 무엇인지 일반인들에게 Y2K의 정체를 벗겨보여 줄 도의적 책임은 있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 정보화에 관해서는 행운아 아닌가. 장차 21세기 정보화 마라톤대회에서 완주해낼 만한 정보화 사전 교육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훈련없이는 완주는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훈련에 달갑게 또한 진지하게 임한다면 완주는 그만큼 확실해질 것이다. 우리 정부에게 국가Y2K 비상대책기구를 국가 최고위층에 신속히 설치하여 지금 당장부터 리허설 포함해서 상시 가동시킬 것을 전세계 Y2K 대처 진도상황을 지난 2년간 주의깊게 지켜봐온 전문가의 하나로서 강력히 건의한다.
/문송천·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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