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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포커스/한국의 로비] "결정적 순간 과감한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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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포커스/한국의 로비] "결정적 순간 과감한 베팅"

입력
1999.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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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의 풍문'에 갇힌 사회… 관료출신 두 로비스트 '베일속 실태' 육성증언■우리나라는 로비의 「천국」인가. 올 한해동안 옷로비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김태정(金泰政) 전 검찰총장에게 로비한 인물이 전신동아그룹 부회장 박시언(朴時諺)씨임이 밝혀지면서 「로비」라는 단어가 새삼 시중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에는 이전부터 로비가 뿌리깊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중요한 정책 결정 과정이나 부정부패 사건 등에는 항상 로비스트가 그림자 처럼 존재해 왔다.

로비스트들의 육성증언으로 통해본 로비의 각종 실태를 살펴본다.

『과거의 위치에 연연해서는 안됩니다. 관계가 괜찮았던 부하 직원들을 중심으로 인간적으로 접근해나갑니다』 정부 모부처 차관급 관료출신 A모씨.

공직을 떠난뒤 국영기업체에 잠시 몸을 담았다가 지난해부터 모재벌 그룹의 고문으로 일하며 사장급 대우를 받고 있는 그는 경영진으로서 참여하는 그룹 의사결정 과정에는 완전히 배제돼 있다.

그의 일은 그룹 계열사들과 관청의 관계를 매끄럽게 하는 것이다. 그는 과거 공직시절의 동료나 선후배 관료와 정기·비정기접촉을 갖는다. 관혼상제는 물론이고 인사이동도 챙긴다.

A씨의 역할이 돋보인 것은 지난해 12월. 어느 국영기업체에서 발주하는 공사와 관련, 그의 회사를 포함한 3개 업체가 컨소시엄 형태로 입찰 사전심사를 통과했다.

애초에 A씨 회사는 컨소시엄에서 빠져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의 막후 활약으로 성과를 올렸다는 것이 회사내에서 정설로 돼 있다.

『과거의 선후배들이 요직에 있어 활동에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전직관료가 찾아가는 것은 일반인의 관청방문과는 효과면에서 크게 차이가 납니다』「전관예우」관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또 지연 학연 등도 대대로 동원한다고 말한다.

고교와 대학 선배나 지역에서 알려진 정치권 또는 관계의 실세 등에게 가끔씩 문안 전화와 함께 식사를 제공한다. 로비대상의 경조사는 물론 친인척의 각종 행사 까지 꼭 챙긴다.

주위에서「마당발」로 통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그는 양복 호주머니에 수첩을 갖고 다니면서 인사할 곳과 때를 적절하게 배분한다. 그는 이와함께 과감하게 배팅할 때는 회사 고위층과 직접 은밀하게 상의해 집행한다.

『보통 한장(1,000만원)이상은 언제나 현금으로 사무실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는 그는 『로비대상에게 언제나「오리 발」을 제공할 수있다는 암시를 주고 상대가 거부의사가 없으면 은밀하게 집행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로비스트 B모씨. 서울시 국장을 지낸 그는 모재벌그룹 주력계열사인 한 건설회사 전무이사로 스카우트됐다. 그도 임원회의에 참석하기는 커녕 결재서류 서명할 권한 조차 없다. B씨는 관청과의 문제해결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안면장사」라고 말했다.

회사일로 전직 동료나 선후배들을 만나 가장 자주 하는 말이 『내얼굴을 봐서라도…』이다. 또 수주경쟁에서도 타사 관계자들에게 『양보해달라』고 부탁하면 과거의 관계를 생각해 한두번 정도는 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는 이 업무를 매끄럽게 처리한 공로로 부사장까지 승진했다. B씨는 그러나 자신은 이른바 「로비스트」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관청이 제공할 수 있는 편의를 최대한 이끌어내는 것이 관료출신 기업간부의 일이지요. 나는 그저 회사민원을 처리하는 정도입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각 기업들은 자신과 비슷한 경력의 인물들을 회사 고문이나 무임소 중역으로 영입하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해 로비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로비스트들은 이처럼 전직관료들이 상당수이지만 정치인을 비롯해 변호사 교수 언론인 등도 있으며 이들은 정계 관계 재계 등을 넘나들며 로비대상들과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놓고 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숙명여대 박재창교수 "왜곡된 음지문화 양성화 필요"

『로비스트는 안될 일을 되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책결정자에게 정보제공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유도하는 것이 진정한 로비스트의 역할입니다』

숙명여대 행정학과 박재창(朴載昌·사진)교수는 『우리의 로비 풍토가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며 『관련법 제정 등을 서둘러 음지의 로비를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등 선진국의 로비실태를 연구해 온 박교수는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맞게 된 것도 어찌보면 왜곡된 로비풍토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은폐되고 음성화한 로비풍토가 그동안 정책 결정자의 눈을 가려왔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경우 로비스트에게는 진지함과 신뢰성이라는 덕목을 요구합니다. 한번 신뢰를 잃으면 그 사람은 더이상 로비스트로서 활동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박교수는 『선진국의 로비스트는 정책결정의 조력자 역할도 병행한다』며 『로비를 검은 돈이 오가는 부정한 거래 정도로 인식하는 한국적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박교수는 또 이런 풍토에 젖어있다 보니 우리의 대외로비력도 상식이하의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대개 밑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정책이 결정됩니다. 우리처럼 고위층 몇 사람만 거친다고 해결되는게 아니죠.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그저 고위층에 끈을 대고 대외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에 머물러 있습니다』 로비 상대국 문화를 감안해야 한다는 기본수칙을 망각한 로비는 성공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박교수는 지구촌 전반에 부는 반부패 바람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내부의 로비풍토 개선과 함께 대외 문제를 담당할 전문 로비스트 양성에 정부와 대기업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훈기자

■모그룹 신규사업때 3,000명 상대설도

기업은 신규사업 추진을 결정하면 바로 행정부 주무부처를 대상으로 로비를 시작한다. 먼저 해당 부처의 인사조직표를 놓고 공략대상을 결정한다. 공략대상이 결정되면 그 사람이 어떻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따진다.

누구 줄이냐, 어느 학교 출신이냐, 출신지역은 어디냐 등을 분석한뒤 이에 맞춰 로비팀을 구성한다. 로비팀 구성은 전직관료등을 영입하는 경우와 사원 활용을 병행한다.

그다음 각개격파식으로 로비대상자를 따라붙는다. 로비에 쓰이는 자금은 기업주의 특별지시에 따라 전결처리되고 엄청난 액수가 아니면 사용내역을 묻지도 않는다.

최근 우리나라 기업은 이같은 직접로비와 함께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는 우회적 방법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가장 치밀하고 세련된 로비를 자랑하는 모그룹은 승용차 사업진출을 위해 이 문제에 영향을 미칠만한 정계 학계 언론계 소비자 단체 등 각계각층의 인사를 골라 대대적인 로비를 펼치기도 했다. 『동원되지 않은 임원급이 없었다』는 말이 나왔고 로비 대상자만도 3,000명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삼풍붕괴.한보스캔들등 불신.부패 진원

76년 10월의 박동선 사건은 로비라는 말이 국내 일반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당시 지미 카터 행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박정희정부가 재미실업가 박동선을 내세워 미 유력정치인들에 50만-100만달러의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워싱턴 포스트에 폭로되면서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했다.

이후 정치권과 재벌, 각종 이익단체를 둘러싼 공직비리 유형의 로비 스캔들이 매년 한번 이상씩 터져 국민들을 분노케했다.

95년 삼품백화점 붕괴참사는 부정한 로비의 폐해가 무고한 인명에까지 미친 사례다. 91년 한보의 수서택지 특혜분양 사건은 청와대 국회 건설부 서울시 등 정·관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펼쳐진 전방위 금품로비였다.

96년에는 장학로 청와대 부속실장이 효산종합건설로부터 「떡값」을 받아 구속됐고 94년엔 한국자동차보험이 국회 노동위에 돈봉투를 돌려 물의를 빚었다.

각종 협회 등 압력단체의 대정치권 로비도 끊이지 않는다. 96년 이성호 보건복지부 장관 부인이 안경사협회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90년에는 입법과정의 편의를 부탁하며 방재협회가 제공한 2억원을 받은 박재규의원이 처벌을 받기도 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로비스트 1만명 활동… 소개업까지 생겨

『미국은 로비스트가 좌우하는 위원회에 지나지 않을뿐 더이상 국가가 아니다』 미국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46년 연방로비규제법 제정 이후 로비를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한 청원권의 연장으로 받아들여온 미국에서도 로비만능 세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1만명 안팎의 전문 로비스트가 의회와 행정부의 입법 및 정책결정과정에 개입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분야에는 어떤 로비스트가 유능하다」며 적합한 로비스트를 소개해 주는 업종까지 생겨날 정도다.

미국의 로비 비판론에는 로비스트들이 기업과 이익 단체의 「앞잡이」로서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다수의 이익을 해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외국의 통상로비에 대한 미국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외국 정부와 기업의 의뢰를 받은 로비스트들이 미의회와 행정부를 상대로 미국에 불리한 결정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경계심이다.

공직자가 퇴직후 사기업의 간부나 로비스트로 자리를 옮겨가는 「회전문 현상」의 심화도 로비 비판론을 부채질하고 있다. 젊고 유능한 공직자들이 퇴직후 고소득을 보장받는 로비스트가 되기 위해 공직을 잠시 거쳐가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이같은 로비의 부작용을 막기위해 95년 마련한 것이 로비공개법. 로비스트의 이름과 사무실 소재지, 고용업체, 계약기간, 보수 등을 등록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비지출 대상과 내용을 공개토록 한 것이다. 토 퇴직후 일정기간은 자신이 근무하던 기관을 상대로 로비활동에 나서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법도 한계는 있다. 허위로 보고하거나 다른 사람의 이름을 등록해두고 로비활동을 벌이는 것을 막아낼 수 없다는 비판 등이 그것이다.

김현경기자

moo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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