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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부하들만 책임지는 나라 - 문창재

입력
1999.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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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21명, 불구속 13명, 비위사실 해당기관 통보 19명. 지난 주 인천지검이발표한 인천 라이브Ⅱ호프집 화재사건 수사결과다. 숫자만 보면 대단한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부하들만 잡혀가고 높은 사람들은 아무도 다치지 않은 사실을 알 수 있다.구속된 사람들은 업소 및 공사 관계자가 9명, 경찰관 5명, 시·구청 및 소방공무원 4명, 조직폭력배 3명, 기타 5명이다. 불법영업을 하고 불을 낸 당사자들이 많이 처벌받은 것은 당연하지만, 구속 공무원들의 직급을 보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싶다.

구속자중 간부급은 단속과 인허가 책임부서인 시청과 구청 및 소방공무원을 통털어 구청과장 한 사람, 경찰에서 관할경찰서 계장이 두 사람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하위직 공무원들이다. 국회의원과 경찰서장이 업주에게서 돈 받는 것을 봤다고 말한 고교생까지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하면서, 뇌물 받고 허위공문서 만든 인허가 책임자를 아무도 문책하지 않은 수사결과를 어떻게 내놓을 수가 있는가.

호프집 화재 인명피해는 사망 56명, 부상 81명으로 우리나라 화재사건사상 대왕코너 화재에 이어 다음으로 많았다. 수사대상자가 100명을 넘는다던 수사초기의 엄포는 다 어디 갔나.

군청 과장 1명을 포함한 하위직 공무원 몇사람 구속으로 끝난 화성군 씨랜드 화재참사 수사와 너무 닮은 꼴이다. 이로써 아무리 큰 사고가 일어나도 한국의 고위 공직자는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는 확고한 전통이 수립되었다.

공무원들이 불법영업을 눈감아 주고, 시민신고를 묵살하고, 내장재 불연처리 의무 위반을 적발하지 않아 일어난 참사로 137명의 청소년들이 죽고 다친 사건을 이렇게 처리하면서 어떻게 재발방지를 입에 담을 수 있는가.

사건이 일어난지 한달이 넘었는데도 인천시와 관할구청에서는 자체징계나 문책인사를 하지않고 있다. 행정자치부 장관이 시장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또 대통령은 왜 장관의 책임을 묻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투표로 당선됐으니 시장은 아무리 큰 일이 터져도 책임이 없고, 국회에서 해임결의안이 부결됐으니 행자부 장관은 면죄부를 받았단 말인가.

지나간 시대에는 철도건널목 사고 책임으로 교통부장관이 물러나고, 입시파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문교장관이 경질된 일이 있었다. 단순한 사고와 파동의 책임을 장관에게 묻는 것은 바림직하지 못하지만, 이번 참사는 공무원들과 악덕업주의 구조적 유착관계가 빚어낸 「사건」이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촉나라의 명장 마속이 군령을 어겨 전투에 패하자 제갈량(諸葛亮)이 울면서 마속을 참형에 처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그후 제갈량은 임금에게 자신의 벼슬을 낮추어 달라고 상주해 승상에서 우장군으로 강등되었다. 우리도 경찰 최고책임자를 경질하지 않았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이번 사건과 연관지어 고개를 끄떡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를 계기로 인천 화재사건은 화제의 중심에서 벗어났다. 시청 구청 소방서 경찰서 같은 관련기관 공무원들은 길게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재수없는 일이 또 터지지 않기만을 기원하면서. 그러나 대다수의 유가족들은 아직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 보상문제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잊혀져가는 현실을 원망하면서.

분명한 것은 그런 원시적인 사고는 언제 어디서고 또 터진다는 것이다. 추상같은 책임추궁이 없는 한, 이에 자극되어 상하 관계자 모두가 거듭 확인하고 체크하는 반복적인 노력이 없는 한, 그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

온 국민을 지치게 하는 이 세기말적 카오스도 따지고 보면 책임을 묻지않는 리더쉽 부재 때문이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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