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대전법조비리 사건을 시작으로 거센 비난의 압력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견뎌왔던 김태정(金泰政·그림)전법무장관이 끝내 부인이 연루된 옷 로비 의혹사건의 유탄에 맞아 구속됐다.사시 4회인 김전장관은 82년 김석휘(金錫輝)전검찰총장의 눈에 띄어 의정부지청 부장검사에서 일약 대검 중수부3과장으로 발탁된 뒤 중수1과장, 서울지검 특수3부장, 특수1부장, 대검 중수부장, 법무차관을 거쳐 검찰총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가 호남출신이라는 당시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데는 본인의 능력과 처세술도 뛰어났지만 부인 연씨의 내조가 큰 힘을 발휘했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실제 연씨는 김전장관이 지방을 계속 전전하던 평검사 시절 남편의 「인사(人事)」를 위해 검찰 고위간부의 집안 일을 도와주다가 파출부 취급을 당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전장관은 97년 대선 직전 「DJ 비자금 사건」수사유보 결정을 내려 국민의 정부가 탄생하는데 밑거름을 제공했다. 그가 올 들어 터진 대전 법조비리 및 심재륜(沈在淪)고검장 항명사건, 고가옷 로비의혹 사건 등으로 인한 온갖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6월 오히려 법무장관으로 영전할 수 있었던 것도 그에 대한 현 정부의 절대적 신임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장관으로 임명된 지 불과 보름만에 자신의 핵심참모였던 진형구(秦炯九)전 대검공안부장의 「취중 발언」으로 낙마하면서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짧은 기간 긴 역사를 남기고 떠난다』는 퇴임사를 남긴 그는 이후 파업유도 사건으로 후배 검사들로부터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으며, 국회 청문회에서도 의원들의 추궁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또 옷로비 의혹사건과 관련, 특별검사 사무실에 부인 연씨와 함께 자진출두해 울먹이며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불과 열흘만인 12월4일, 김 전장관은 최순영(崔淳永)전 신동아그룹회장측의 집요한 로비에 휘말린 부인 연씨 때문에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수모를 겪고 말았다. 김전장관의 검사생활 27년동안 보이지 않는 내조로 그를 검찰총수에까지 오르게 했던 부인 연씨가 결국은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장본인이 되고 만 것이다.
박정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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