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새 장편 '그것은 꿈이었을까'『나는 삶이 「사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삶에는 모호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 나는 건조하고 명백한 「사실」 속에서만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처럼 불완전하고 애매한 존재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방식인 모양이다』
소설가 은희경(40)씨가 새 장편소설 「그것은 꿈이었을까」(현대문학사 발행)를 발표했다. 기왕의 은씨 작품들, 「건조하고 명백한」 서사가 있는 소설들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서사보다는 이미지의 힘이 훨씬 더 강하다. 작가의 변신 노력이 읽혀지는 부분이다.
의대생 준과 그의 친구 진이 있다. 준은 문화적 교양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화가 실레의 화집과 하드커버로 된 카프카의 「성」, 두 가지는 그에게 특별한 문화적 부호이다. 진은 고향 어머니의 전화와 차가운 맥주를 빼고는 비틀즈만을 사랑한다. 그의 통신 ID는 비틀스의 노래 「헤이 주드」에서 따온 주드이다. 둘은 의사고시 준비를 위해 「레인 캐슬」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방의 한 고시원으로 떠난다. 거기서 준은 계속되는 꿈에 시달리고, 꿈결인듯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후일 수련의로 일하던 준에게 다시 그녀가 찾아오고, 진은 자동차사고로 사망하며, 준은 진의 약혼녀와 결혼한다. 준은 행복한 생활을 꾸려가지만 다시 꿈 속에 그 소녀가 나타나, 자동차사고를 암시한다.
이렇게 소설의 스토리 자체도 「꿈」처럼, 「사실」이기보다는 몽롱하고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의 전개로 이어진다. 마치 안개비에 젖은 고성(古城)을 꿈 속에서 방문하고 온듯, 소설은 독자의 가슴을 아릿하게 젖어들도록 만든다. 줄거리 자체보다는 은씨가 소설의 곳곳에 배치해놓은 젊은 문화적 상징들, 비틀스의 노래나 화가 실레의 자화상에 대한 이야기 등이 이 작품의 주제를 암시한다. 주인공 젊은이들은 「이 시각 어디선가 많은 일이 일어나긴 하겠지만 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이다」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구성도 비틀스가 65년에 발표한 명반 「러버 소울(Rubber Soul)」에 실린 「미셸」 「걸」 등, 14곡의 노래 제목을 각각 소제목으로 해서 이루어져 있다.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출세작인 「노르웨이의 숲」도 이 음반에 실린 노래에서 제목을 따온 것.
은씨는 『나는 요즘도 사물을 원인과 결과로만 보려고 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며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일도 있다는 것을 한번 그려보고, 나 자신 작가로서의 변신도 시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세번째 장편인 이 소설은 98년 여름 하이텔에 연재했던 것. 올해에는 한 편의 작품도 문예지에 발표하지 않았다는 은씨는 내년에 다시 중단편에 주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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