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한 견제에 나섰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산하기구의 관계자들은 지난달 30일부터 미 시애틀에서 개최되고 있는 WTO 각료회담이 선진국의 이익을 위해 개발도상국들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일제히 비난하고 있다.아난 총장은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고를 통해 『새 밀레니엄에는 선진국과 개도국이 서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공정한 무역질서를 구축하자』고 촉구했다. 그는 『이제까지 부자 나라들은 가난한 나라들에 비해 관세를 낮추는데 인색했다』며 『선진국이 자국의 문제를 개도국들의 희생을 통해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 등 서방 선진국 지도자들이 비정부민간기구(NGO)의 시위를 비난한 것과 달리 그는 이들에 동조하는 입장을 보였다.
또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유엔개발기구(UNDP)도 아난 총장과 같은 노선을 취하며 WTO의 일방적인 자유무역 확대노선에 반기를 들었다. 시애틀 각료회담에 FAO대표단을 이끌고 참석중인 하르트비그 드한 FAO 사무차장은 연설을 통해 『식량생산이야말로 인간활동의 사활이 걸린 분야』라며 선진국의 농업보조와 보호주의 관행을 비판했다. 이에 앞서 세네갈 출신인 자크 다우프 FAO 사무총장도 지난달 23일 『개도국들은 과거의 무역협정들로 시장개방을 해 많은 타격을 입었다』며 『선진국은 각국이 서로 다른 발전단계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UNDP는 WTO가 무역분야를 넘어 노동과 환경분야까지 다루는 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마크 멀럭 브라운 UNDP 대표는 2일 『WTO가 노동과 환경 이슈까지 다루는 것은 잘못됐다』며 『물론 국제적인 체제내에서 노동과 환경을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노동분야는 국제노동기구(ILO)가 다루는 것이 적절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과 산하기구의 WTO 비판은 미국과 일부 선진국이 유엔을 제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WTO를 통해 무역의 틀을 규제하려는 의도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미국과 선진국들은 세계 경제를 자신들이 「대주주」로 있는 WTO를 비롯,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 등을 중심으로 주무르고 있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난 총장 등의 발언은 그들이 제3세계 출신이면서도 선진국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지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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