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정 전법무장관과 박주선 전청와대법무비서관이 대검청사에 소환돼 조사를 받던 3일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은 김천지청 청사 준공식에 참석하느라 두 사람과 조우(遭遇)하지 못했다. 그러나 김전장관 등 2명의 출두 소식을 듣고 몹시 비통해했다는 후문이다. 단지 검찰 선·후배를 조사하는데서 오는 참담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 전장관과는 97년 대선 전 DJ비자금사건 유보결정으로 한배를 탔던 사이였다.DJ비자금사건 당시 검찰 수사진용은 김태정검찰총장, 박순용 대검중수부장, 박주선 수사기획관이었다. 모두 대검 중수3과장을 지낸 검찰내 특수통이었다. 김전장관은 여당의 DJ비자금 고발사건을 자신의 직할부대인 중수부에 배당했다.
그러나 김전장관 등 세사람은 장고를 거듭한 끝에 『당장 수사에 착수하라』는 여당의 압력에도 불구, 사건 고발 하루만에 전격적으로 수사유보 결정을 내렸다. 정치자금을 수사할 경우 폭발력이 너무 크고, 여야 형평성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데다 국론분열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권의 향배에 따라 운명이 뒤바뀔 세 사람으로서는 한판 「도박」을 건 셈이었다.
세사람은 결국 국민의 정부 출범으로 당시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전장관은 대전법조비리 및 옷로비 의혹사건에도 불구, 지난 5월 법무장관에 발탁됐다. 박총장 역시 수사유보 결정 5개월만인 지난해 3월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지검장에 입성한 뒤 올해 5월에는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박전비서관 역시 지난해 2월 청와대법무비서관으로 임명돼 사정수사를 지휘했다.
그러나 한배를 탔던 이들은 2년여만에 옷로비의혹 사건과 사직동팀 보고서 유출문제로 「상반된 자세」로 대좌하는 처지가 됐다. 박총장은 두사람을 향해 「칼」을 들이대는 자리에 섰다. 박총장의 표정이 이날 석고상 처럼 굳었던 것도 결국 제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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