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독립을 눈앞에 두고 정치적 내분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특히 자치정부의 수반인 야세르 아라파트가 끊임없이 부패와 테러 의혹을 받으면서 반대파로부터 거센 심각한 정치적 도전을 받고 있다. 때문에 관측통 사이에서는 부패와 테러 의혹이 독립국가 선포를 앞둔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보여주는 단초라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팔레스타인 의원과 대학교수 등 저명인사 20명은 지난달 아라파트의 부패 의혹과 관련, 정치·행정적 책임을 묻는 연판장에 서명했다. 그런데 서명자 중 한 사람인 무와위아 알 마스리(55) 의원이 1일 총격을 받으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마스리 의원은 귀가 도중 복면 괴한 3명으로부터 몽둥이로 구타당한 뒤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사건 현장에서 괴한의 복면을 찢으며 대항했던 마스리 의원은 『한명은 보안군이었다』며 아라파트 충성파의 테러 가능성을 제기했다. 반(反)아라파트 세력의 대표주자인 무장단체 「하마스」(이슬람저항운동) 등도 철저한 진상 규명과 정치적 자유, 언론 자유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외신들이 보는 이번 사건의 본질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만연한 부패와 비능률, 정책 부실과 아라파트를 중심으로 한 권력집중 현상이다. 정부는 시멘트와 가솔린의 분배 및 기초 생활품에 대한 세금 부과를 통제한다. 이 과정에서 아라파트를 정점으로 한 자치정부 관계자들의 각종 부패 시비가 끝없이 이어져왔다. 각료부패에 대한 의회보고서가 제출되고 판사와 대학교수들이 정부의 사법 간섭에 항의 시위를 벌인 일도 있다.
더욱이 연판장에 서명한 인사들이 종전까지 과격한 성향을 보였던 반(反)아라파트 세력 출신이 아니라 의원과 대학교수를 포함해 의사, 은퇴한 지방 정치인 등 저명인사들이며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내포돼 있다. 피격당한 마스리 의원도 평화협상 대상인 가자 지구 출신 의원이다. 따라서 이번 연판장 서명에 이은 테러 사건은 그동안 금기시됐던 아라파트에 대한 충성심에 이의를 제기하고 권력 분배 및 특권에 대한 논의 확산에 기름을 붙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에 아라파트측은 이같은 움직임을 이적 행위라고 규정하고 대규모 아라파트 지지 집회로 맞서고 있다. 한 아라파트 측근은 가자 지구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판장이 우리가 가야 할 국가적 목표에 함정을 파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편 연판장 서명자 중 면책특권이 부여된 의원을 제외한 수명이 연금된 상태이며 3명은 사법처리될 전망이다. 아라파트 수반은 한때 의원 면책특권 박탈을 경고했으나 의회는 2일 비공개 회의를 갖고 비판 수준에서 논의를 마쳤다.
김병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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