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이 끝나는 날, 사탄이 풀려날 것이다(요한계시록 20장 7절). 혜성이 달을 통과하는 1979년의 어느 날, 한 여자아이가 태어난다. 이름은 크리스틴(로빈 튜니). 「사탄의 씨」를 잉태할 아이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기 전까지 사탄이 그를 범하면 둘은 지옥의 문을 열 것이고, 그들이 새 천년을 지배하며 모든 생명은 없어지게 된다. 1999년 12월 28일이 되자 예언처럼 악마(가브리엘 번)가 다른 사람의 몸을 빌어 나타나 여자를 찾는다.3일 동안 벌어지는 「지구종말」의 위기. 그러나 무슨 걱정인가. 우리의 영웅 아놀드 슈워제너거가 있는데. 우리의 「터미네이터」는 천하무적이다. 몰핑기법으로 자유자재로 몸을 변형하고, 총을 맞아도 죽지않는 미래의 사이보그까지 무찌른 마당에 사탄이라고 별 것인가. 그는 또 멋진 휴머니스트다. 어머니와 아들을 구하고는 더 이상 지구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이보그의 출현을 막기 위해 스스로 용광로에 뛰어들어 잠기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그 영웅은 『여자 한 명의 희생으로 인류를 구할 수 있다』는 바티칸 기사단 보다 훨씬 숭고한 정신의 소유자이다. 「악마의 씨」이지만 한 인간이기에 절대 죽게 할 수는 없다. 그 때문에 엄청난 어려움과 위기가 닥쳐도, 무수히 다른 사람들이 죽어도 상관없다.
하긴 개 한마리 구하기 위해 화산폭발로 용암이 흘러내리는 산속까지 뛰어드는 게 할리우드이고, 그 모습에 감동해 박수를 쳐대는 인간들이 미국 관객이다. 행동하는 우리의 터미네이터는 『믿음을 갖고 여자를 지켜주라』고 말만하고 무력하게 앉아있는 교황을 바보로 만든다.
4일 개봉하는 세기말의 영화 「엔드 오브 데이즈」(감독 피터 하이엄스)에서 터미네이터는 경찰관 출신의 초라한 보디가드 케인이 됐다. 보잘것 없어 보이거나 측은한 인물이 영웅이 되면 더욱 신이 나고, 미국이 「기회의 땅」이란 이미지 효과도 큰 법. 그는 무장강도에게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었다.
그래서 신을 믿지 않고, 늘 술에 절어있다. 그러나 크리스틴이 악마와 바티칸 사제단의 이중위험에 처하자 괴력을 발휘한다. 함께 세상을 지배하자는 사탄의 유혹에도 끄덕없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는 버렸던 신도 다시 찾고, 사탄이 자기 몸속에 들어오자 「에이리언」의 리플리처럼 스스로를 희생해 버린다.
벌써 50대로 근육이 늘어지고 힘이 빠지는 노화현상을 막을 수는 없지만, 여전히 헬기의 밧줄을 타고 하늘을 날며 범인을 쫓고, 재래식 기관총으로 사람들의 몸 속에 마음대로 들어가는 악마와 대결해 지구를 지키겠다는 무모하고 어이없는 그가 있는 한, 「엔드 오브 데이즈」(The End of days)는 절대 오지 않는다. 할리우드는 그래서 위대하다.
/오락성★★★ 예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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