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미지 식물원의 해외 매각이 지난달 30일 무산되자, 울상을 지어야 할 서울시가 뜻밖에도 쾌재를 부르고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로 떠안았던 식물원을 팔기 위해 5월부터 미 CGI사를 상대로 매각협상에 열을 올리던 모습과는 딴판이다.서울시는 11월 하순 여미지 식물원 매각계획을 비밀리에 철회했다. 당초 삼풍백화점 붕괴의 잔재를 청산하고,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매각 작업을 진행했지만 최근 국회의원과 시민단체의 반대가 거세자 방향을 180도 선회한 것. 10월 국정감사에서 여야의원들은 『토종 식물종의 해외유출이 우려된다』며 매각철회를 주장했다. 여기에 『민선시장으로서 시민들이 반대하는 일을 무리하게 할 수 없다』는 명분과 경기회복으로 좋아진 재정사정도 매각을 고집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문제는 CGI사측과 맺은 가계약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였다. 10억원의 가계약금을 낸 CGI사는 당초 8월말까지 내기로 했던 계약금 51억7,000만원을 11월말로 연기하는 대신 3억원 추가 납입하고, 계약금을 지불후 60일이내에 잔금을 완납하기로 했다.
시는 매각불가 방침아래 법적 문제를 검토하며 대응 시나리오를 짰다. 우선 CGI측이 30일까지 계약금을 냈을 경우. 가장 난감한 케이스였지만 계약서 작성때 60일 이내에 잔금 460여억원을 일시불로 지불토록 하는등 계약조건을 강화, 자금사정이 어려운 CGI측이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두번째 시나리오는 가계약의 합의해제. CGI측과 협상해 가계약을 없던 일로 하되 시가 가계약금 13억원을 돌려주는 것으로, 법정 소송이나 잡음없이 매끄럽게 매각철회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외국투자법인 설립에 자금을 들인 CGI측은 이 제안을 끝내 거부, 막판까지 시관계자들의 애를 태웠다.
마지막으로 CGI측이 계약금을 납입시키지 못하는 시나리오. 즉시 계약결렬을 선언하는 방안이다. 때마침 납입 예정일인 지난달 30일까지 CGI사측이 계약금을 내지 못하자 시는 즉시 결렬을 선언했다. 시 관계자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큰 짐을 더는 순간이었다.
제주 서귀포시 중문단지 안에 있는 여미지식물원은 3만6,000평의 터에 2,000여종 15만본의 식물을 보유한 동양 최대 식물원. 원래 삼풍건설 소유였으나 95년 삼풍백화점 붕괴에 따른 유족보상금을 지급한 서울시가 소유권을 넘겨받아 관리해 왔다.
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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