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트로 산다」디지털세대가 주도하는 벤처기업이 늘면서 그들만의 독특한 기업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세대의 디지털라이프」.
디지털라이프의 핵심은 비트(bit). 아날로그의 반대인 디지털의 구성요소인 0과 1을 뜻하는 비트는 말 그대로 점. 위에서 아래로 순서대로 선을 내리긋는 아날로그세대와 달리 가운데 점을 하나찍고 다시 아래와 위에 마구잡이로 점을 찍어 하나의 선을 만드는 식이다. 즉 과정보다 목표와 결과를 중시하는 삶을 말한다. 이론을 넘어선 이들의 생활은 조직이 둔중한 대기업이나 보수집단에서 바라보면 경악에 가까울 만큼 파격적이다.
서울 여의도에 자리잡은 인터넷벤처기업인 ㈜디지털라이프 사무실. PC활용지인 「아하PC」를 만들고 인터넷뉴스사이트를 운영하는 이 업체는 기존 조직에서 지켜오던 각종 관습들을 올해초 출범당시부터 모두 없애버렸다.
우선 정시 출퇴근제가 없다. 자신이 가장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간에 일하면 된다. 그래서 새벽에 출근했다가 낮에 퇴근하거나 한밤중에 출근하는 사원도 있다.
장소도 구애받지 않는다. 집에서 일하며 한 달 내내 사무실에 얼굴 한 번 안비치는 사원이 있고 며칠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는 사원도 있다. 그래서 업무협의를 위해 노트북과 인터넷은 물론이고 사무실 한켠에 침대는 기본이다.
근무시간에 음악을 크게 틀거나 게임을 즐겨도 상관없다. 누워서 일하겠다면 PC를 바닥에 설치해 주겠다는 것이 이 업체의 의지이다. 정해진 목표를 달성할 수만 있다면 일체 직원들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경영자의 의지도 중요하다. 김재관사장은 사업초창기, 난장판에 가까운 사무실풍경을 보고 임원들이 간섭을 하자 임원들에게 사무실 출입금지령을 내렸다. 아날로그적인 사고방식으로 디지털세대를 구속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박용후(34)팀장은 『직원들이 즐기며 일을 할 때 업무효율은 가장 높아진다.』며 『회사는 직원들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 업체가 도입한 방법은 소팀장제. 직원들 각자가 맡은 분야의 책임자가 돼서 사업계획부터 운영, 결산까지 책임진다. 심지어 동료를 채용하는 인사권까지 갖고 있다.
이 업체는 이같은 방법으로 매출 1억원 달성까지 1년이 걸린다는 전문지시장에서 6개월 만에 1억원 목표를 가볍게 넘어섰고 다음달에 인터넷방송국과 인터넷쇼핑몰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사무실 한 켠에 게임기인 「DDR」을 설치한 벤처기업 그래텍, 회의실에 전자오락기가 놓여있는 비테크놀로지, 탁구대위에서 회의를 하는 드림위즈 등도 비트로 살아가는 디지털라이프를 고수하는 벤처기업들이다.
그들의 일하는 모습은 얘기거리를 넘어서 대기업에 심각한 고민거리를 던져줬다. 최근 삼성그룹은 디지털라이프, 드림위즈 등의 일하는 모습을 촬영해 그룹방송으로 전 계열사에 방영, 일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곁들인 인터뷰에서 대학생들이 경직된 대기업이나 보수적인 집단보다 자유롭고 창의성을 중시하는 벤처기업을 지원하겠다는 발언들로 그룹임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래텍의 배인식(31)사장은 『디지털시대가 다가오면 기업문화는 자연스럽게 변하겠지만 능동적으로 대처한 기업과 수동적으로 당한 기업은 결과가 크게 다를 것』이라며 『기업의 존폐를 위해서라도 디지털시대의 기업문화에 대해 경영진과 직원들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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