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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일] 박재일 선배와 만남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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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일] 박재일 선배와 만남 인연

입력
1999.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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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운동에 몸담은 지도 어느새 2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지나온 삶의 절반 정도를 농민운동으로 살아온 셈이다.초등학교 때의 희망 역시 농민운동가였다. 5학년때(60년)로 기억되는데 그때 읽었던 심훈의 「상록수」는 나에게 박동혁과 같은 농민운동가의 꿈을 꾸게 만들었다. 그후 내가 가졌던 주된 관심은 채영신같은 동지를 만나는 것과 농민운동을 한다면 상급 학교에 굳이 진학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하는 점 등이었다.

어쨌든 대학은 다녔다. 하지만 학생운동에 뛰어들면서 구속과 제적의 과정을 피할 수 없었다. 이윽고 『이제부터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고민을 안은채 나는 사회에 내던져졌다.

현실은 막막하기만 했다. 당시 현장운동이라고는 교회운동쪽 밖에 없었고 노동운동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 농민운동은 거의 관심 밖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 무렵, 인농(仁農) 박재일(朴才一)선배를 만났다.

지금은 사단법인 한살림 대표를 맡고있는 그는, 함께 출감했던 후배와 75년말 당시 민주화 운동의 메카라 할 수 있던 원주에 갔다가 만났다. 그때 그는 가톨릭농민회 강원도협의회 의장이었다.

그는 여느 선배와는 확실히 달랐다. 함께 술을 마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10살이나 많은 그가 오히려 내 또래의 젊은이보다 훨씬 더 진취적이고 개방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나는 잠시동안의 대화를 통해 그에게 매료됐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은채 그 자리에서 농민회에 가입했다. 그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배라고 부른 사람이었다.

그와의 인연으로 무위당(无爲堂) 장일순(張壹淳)선생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고 좋은 선배와, 그리고 지금까지 농민운동의 한길을 걸을 수 있도록 변함없이 지지해준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지금 나는 귀농운동을 하고 있다. 60여년전 박동혁과 그의 동지들이 벌인 농촌계몽운동에 비해 귀농운동은 생태적 가치, 자립적 삶 그리고 문명을 위해 농촌마을 근거지를 일구는 것으로 나는 이를 제2의 브나로드운동이라 부른다.

농민운동가로 살고 싶었던 내 꿈이, 어린 시절의 다짐 그대로 실현됐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농민운동가의 길을 가게 이끈 박재일 선배와, 그를 통해 알게된 많은 선배 동료들을 생각하면 늘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이병철·전국귀농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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