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계에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내년 7월로 예정된 의약분업이 몰고올 지각변동이 그것이다. 진료는 의사가, 조제는 약사가 담당하는 의약분업이 이제서야 본궤도에 올랐다. 한국을 약의 공화국이라고 했던가.약의 오·남용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현실에서 그것은 차라리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인지 의약분업을 둘러싼 시비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벌써부터 관련단체들이 의료·의약시장의 급격한 재편을 걱정하는 눈치이며, 수입의 격감이 예상되는 당사자들은 폐업 및 전업까지도 불사할 각오이다. 의사·병원단체들은 의약분업의 「올바른 시행」을 요구하며 일시파업 및 규탄대회에 돌입하였다.
다시 강조하건대, 의약분업의 방향은 옳다. 그러나 한국의 모든 정책이 그러하듯 일단 공을 차놓고 달려가는 꼴이다. 이해당사자들이 정책여파에 대비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결코 주는 법이 없으며, 불이익은 고스란히 당사자 아니면 소비자들의 몫으로 전가하는 것이 관성처럼 굳어진 한국의 정책실행 방법이다.
의약분업을 시행하기 이전에 의약계에 종사하는 수십만명의 고급인력들이 감당할 생존의 문제들과 소비자에게 미치는 여파를 심사숙고하고 그 충격을 완화해줄 보완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없다.
우선, 의약분업이 선진국형 의료제도인 만큼 처방전 없이 구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의 수를 소폭으로 제한해야 한다. 의약분업이 시행된 이후에도 항생제, 심장약, 비아그라같은 전문약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1만3,000여종의 약품 중 3분의 1에 불과한 전문의약품의 리스트를 늘리는 것 자체가 의료·약품업계간의 사활을 건 투쟁을 예고한다. 같은 논리로 의사의 처방전없이 약사가 약을 조제하는 행위는 의약분업의 원칙을 훼손한다. 그런데 고객의 병세를 듣고 이런저런 약을 권했던 기존의 약국 관행에서 약사도 소비자도 쉽게 벗어날는지 의문이다.
제약업계와 약국시장에 일대 파란이 예상된다. 의사에게 낯선 영세제약회사는 도산에 직면하거나 외제약품의 수입상으로 전업이 불가피하며, 처방전에 명시될 수천가지 약품을 제대로 구비할 능력이 없는 길모퉁이 약국들도 같은 운명에 처할 예정이다. 약품업계의 대형화와 전문화를 촉진하는 대가로 주민의 사랑방 역할을 자임했던 동네 약국을 잃는다.
의료업계의 충격은 더욱 크다. 3차진료기관인 종합병원에서도 1차의료 행위가 슬며시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그나마 약조제로 유지비를 충당해왔던 동네의 영세 개인병원들은 문을 닫을 운명이다.
이를 대비해서인지 정부는 최근 진료행위에 대한 보험수가를 20%정도 인상해주었지만 보험수가와 각종 검사비가 워낙 낮게 책정되어 진료 환자수를 늘리는 것으로 버텨왔던 의료계의 남모를 고민을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위급한 질병이 아니라면 대형병원에 쉽게 발길이 가지 않는다. 그런 만큼 건강관리와 질병치료의 공헌도에 있어 동네 개인병원의 역할은 결코 만만치 않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이들은 현대사회의 최대관심사인 「질병에서의 자유」를 선사하는 사회적 서비스의 전령들인 셈이다.
정부는 그렇지 않아도 말많은 의료보험료를 높여 영세개인병원을 살릴 생각은 없는 듯하며 의약분업의 본래 원칙을 강화하여 20만명에 달하는 약사의 표밭을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정부의 의료정책은 낮은 보험료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동시에 원하는 국민들의 기대와, 전문적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적정이윤을 보장하라는 의사·약사의 요구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유럽의 어떤 국가도 양질의 의료서비스와 높은 의료비간의 대체관계를 시원스럽게 해결한 경우가 없다. 이것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의보통합의 다음과제이다.
송호근·서울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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