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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관동십경에 담은 사대부들 흥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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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관동십경에 담은 사대부들 흥취

입력
1999.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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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250여년 전인 1745년 봄, 글 잘하기로 소문난 김상성(1703∼1755)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다. 그는 이듬해 봄, 관내 여러 고을을 순시할 때 화공을 데려가 경치를 그리게 하고, 그것을 친한 이들에게 보내 시를 지어달라 했다. 그렇게 받은 시를 그림과 한데 묶으니 시화첩 「관동십경(關東十境)」이 됐다. 통천 총석정, 강릉 경포대, 간성 청간정, 양양 낙산사, 고성 삼일포,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 평해 월송정의 흔히 꼽는 관동 팔경에 흡곡 시중대와 고성 해산정을 더한 것이다.서울대 규장각이 갖고 있던 이 책이 최근 나왔다. 경승별로 맨 앞에 그림, 이어서 시인들의 글씨 그대로 원본을 싣고, 누구나 쉽게 시를 감상할 수 있게 원문과 번역을 붙였다. 고운 미색 종이에 인쇄된 고졸한 옛 그림과 운치있는 시, 초서체 붓글씨의 어우러짐이 멋스러워 보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시는 김상성을 비롯해 조명교 조하망 김상익 오수채 조적명 이철보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태백 등 8명의 66수. 현재 전하는 시화첩이 대부분 18세기 중엽 조선의 진경문화를 주도한 노론 계열 문인들 것인데 비해, 이들은 모두 소론 문인들이다. 시는 승경(勝景)의 아름다움과 흥취를 노래하면서 저마다 포부와 이상을 담고 있다. 때는 노론과 소론의 탕평이 이뤄져 피비린내 나는 정쟁이 잠잠해진 시기라, 이 시화첩은 안정기를 맞은 태평시대 지식인들의 풍류와 정신세계를 엿보게 한다.

「누가 자라의 뼈를 가지고/ 일찍이 백옥루를 세웠는가/ 성난 파도도 무너뜨리지 못하여/ 영겁토록 허공에 남아있네/ 조물주의 기교를 다하였고/ 귀신의 도끼질을 거쳤네/ 아득히 홀로 선 마음은/ 곧바로 뗏목 타고 노닐려 하네」(김상성의 총석정 시에서)

「곱디고운 달빛은 보름달이요/ 넘실넘실 호수 빛은 만 구비라네/ 노 저어 은하수를 거슬러 올라가니/ 깊은 밤 찬 기운에 잠 못 이루네」(김상익의 삼일포시에서)

「바람과 우레가 울려 푸른 바다가 좁고/ 해와 달이 한가로워 세상이 장구하구나/ 비굴하고 다투는 무리들이/ 여기서 바라보며 마음 넓혔으면 하네」(조하망의 청간정 시에서).

정옥자 규장각 관장은 서문에서 『이 시화첩은 조선문화가 절정에 이른 18세기 진경시대 지식인 사대부들이 남긴 진경문화의 예증』이라고 책의 가치를 밝히고 있다. 원문 초서를 읽고 해제를 달고 옮기는 일은 규장각의 양진석 김남기 두 사람이 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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