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작 종이 울렸다. 40대 후반의 남자 교사가 공부할 자료를 나눠주려는데 몸집 큰 한 학생이 교실을 나가버렸다. 선생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이유다.그 학생의 부하인 두 학생도 「왕초」가 나가자 교실을 뛰쳐나갔다. 선생은 속으로 「이 정도면 그래도 낫다」 고 여겼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도 선생을 높임말로 붙이지 않고 부르기 시작했다. 서로 큰 소리로 텔레비전 이야기를 하고, 교실을 돌아다니는 학생도 몇 명 있다.
공이나 급식 반찬을 선생의 등을 향해 던진다. 학급 일지에는 여러 아이들 손으로 「선생 죽어라!」고 휘갈겨 썼다. 선생은 두 달 뒤에 병가를 내고 학교를 떠나고 만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건 우리나라 초등학교 모습은 아니다. 일본 한 지방 초등학교 6학년 교실 풍경이다. 아니 그렇게 안심할 수 없을 지 모른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일본 같은 상황이 여기서는 벌어지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비록 초등학교는 아니지만 교사의 체벌 문제가 계속 문제가 되고, 갈수록 체력으로, 법으로 선생님을 이기겠다는 학생들이 늘고 있으니까.
일본 아사히신문사 사회부는 98년 11월부터 1년 동안 이처럼 교사를 무시하는 사례가 늘어가는 초등학교 현장을 르포로 연재했다.
「학급붕괴」는 연재가 끝난 뒤 그 기사를 묶어 최근 일본서 나온 책의 번역본이다. 일본에서는 「이지메(왕따)」가 적지 않은 사회문제였고, 드디어는 교사가 왕따당하는, 그래서 학교 자체가 무너지는 현상까지 최근 몇 년 사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아이들의 파괴적인 행동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남을 때리거나 물건을 부수는 학생에게 『왜 이런 폭력을 저지르느냐』 고 물으면 『메슥거리니까』하고 대답한다.
98년 토치키현 쿠로이소시에서는 26세의 여교사가 수업에 지각한 중1 남학생에게 주의를 주자 그 남학생이 『까불지 마』하며 갑자기 칼로 여교사를 찔러 숨지게 한 사건까지 일어났다.
책에는 홋카이도에서 큐슈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현장 보고와 교사와 아이들, 그리고 학부모 인터뷰를 통해 무너지고 있는 학교를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취재진들은 학급붕괴라는 것은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난폭해지는 아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반」(학급)이라는 「마당」의 문제라고 본다. 문제의 핵심은 감정을 비이성적으로 폭발시키는 아이들의 경우지만 잠자코 있는 아이들도 스트레스는 쌓여 있다.
학급이라는 집단의 컵 속에 아이들의 음의 에너지인 물이 조금씩 고이고 끝내는 가득 차 흔들린다. 그리고 배출구는 교사가 된다.
해결책은 여러가지로 찾아볼 수 있다. 교사는 상하관계에 의존하지 말고 아이들과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를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아이들은 옛날보다 훨씬 다양하고 그들의 문제는 여러 겹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래서 취재진은 많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맞는 교사와 일대일의 인간관계를 요구하고 있는 현실을 잘 살피하고 조언했다.
학급담임제가 아니라 차라리 반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그룹제를 시작하여 익숙해진 정도에 따라 학생이 소속을 고르는 방식의 교육제도도 추천하고 있다.
일본의 몇몇 학교들은 이런 팀 교사(TT·Team Teacher)를 채택했다. 정보의 공개도 필요하다. 학급이 무너진 뒤 교사가 백기를 들고 학교의 관리직에 사실을 알리고, 다시 교직원 회의가 열리기까지는 적어도 3개월.
문제를 돌이키기 어려운 긴 시간이다. 역시 학급이 담임의 왕국처럼 존재할 때 이런 일은 흔히 일어난다.
또 하나는 아주 근본적인 문제다. 아사히신문 취재진은 「학교가 지향해 온 것의 내실을 재검토할 시기가 아닐까?」고 묻는다.
『선생은 원칙만 주장하니까 싫어요』 『착실하지만 본심이 아니에요』 학교와 학생, 교사와 학생의 시대차가 커지고 그것을 학교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심각하다.
학급붕괴를 이야기하는 것은 학교의 의미를 되묻는 작업이고, 가라오케와 디디알(DDR)처럼 일본에서 시작해 우리에게도 닥친 문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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