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계가 정치자금 투명화를 위해 어려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10일의 첫 여야 당수토론회에서 오부치 총리는 자민당도 정치인 개인에 대한 기업·단체의 헌금을 금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업·단체 헌금의 의존도가 83%를 넘는 자민당이 당내의 무성한 반대를 무릅쓰고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언제 있을지 모르는 총선에서의 부담을 의식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경과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95년 「정치자금규정법」 개정 당시의 정치개혁 의지가 되살아나고 있다.26일 자민당 총무회가 설치를 승인한 총재(총리) 직속의 「정치제도 개혁본부」는 정치자금 투명화를 위한 정치개혁위원회와 국회개혁위원회, 당개혁위원회 등으로 이뤄졌다. 전후 오랫동안 금권정치의 본산이었던 자민당에까지 정치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95년 정치자금규정법 개정 이래 일본 정치는 많이 맑아졌다. 정치인은 정치자금의 수입·지출을 해마다 자치성에 보고해야 한다. 후원자 개인의 헌금은 연 150만엔으로 제한돼 있으나 연 5만엔 이상은 내역을 공개하기로 정치권이 합의해놓고 있다. 기업·단체의 헌금은 연 50만엔을 넘으면 내역을 공개해야 하며 국민 1인당 250엔으로 된 정당지원금의 사용 내역도 예외가 아니다. 여기에다 정경유착의 핵심인 정치인 개인에 대한 기업·단체 헌금이 금지되면 일본 정치는 더욱 맑아지리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는 「정치인은 3개의 지갑을 차고 있다」는 말이 있다. 첫번째 지갑은 개인 자금관리단체, 두번째는 정당 지부, 세번째 지갑은 「특정파티 개최단체」, 즉 후원회다. 세번째 지갑에 이어 첫번째 지갑에 대한 기업·단체 헌금길이 막힐 전망이지만 두번째 지갑은 활짝 열려 있다. 자민당은 물론 민주당도 이를 막아서는 안된다는 자세이다. 문제는 정당 지부에 대한 헌금은 개별 한도액이 없어 얼마든지 뭉칫돈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선거구나 기초자치단체별로 숫적 제한이 없다. 99년 1월 현재 모든 정당의 지부는 7,028개이며 이중 자민당 지부가 5,736개나 된다. 또 세개의 지갑 사이를 오가는 자금 이동에는 아무런 규제가 없다.
이때문에 정치권에 대한 일본의 여론은 극히 차갑다. 미리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두었다는 의혹때문이다. 이런 법의 구멍을 막지않는한 일본의 정치개혁은 아직 갈 길이 남아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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