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야누스의 게임이다. 적대적인 얼굴과 우호적인 얼굴을 함께 갖고 있다. 적대적인 면에서 골프를 받아들이면 평생 골프와 힘겨운 씨름을 해야 하고 우호적인 게임으로 받아들이면 끝을 알 수 없는 골프세계를 탐험하는 묘미를 맛볼 수 있다.골프를 직업으로 삼는 프로골퍼들은 상대를 이겨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 때문에 적대감을 갖고 게임에 임하기 쉽다. 그러나 이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기라성 같은 선수들을 모두 적으로 돌려 일일이 대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박세리나 김미현이 애니카 소렌스탐, 캐리 웹, 줄리 잉스터, 도티 페퍼, 로라 데이비스 등 쟁쟁한 골퍼들을 모두 적으로 삼아 싸운다면 승리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한 대회에 60-70명의 내로라는 프로들이 참가하는데 이들을 모두 적으로 돌려놓고 대결을 벌인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경쟁자의 성적에 따라 희비애락에 휩싸여 자신의 리듬과 페이스를 지킬 수 없을 것은 자명하다. 적들을 이기기 위해 쫓아다니다 자신이 먼저 지쳐 쓰려지는 결과가 빚어지고 말 것이다.
친선을 내세운 아마추어골퍼들도 막상 게임이 시작되면 상대를 적으로 돌리는 우를 범한다. 「골프란 궁극적으로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진리를 잊고 외부에서 적을 찾으면 나를 제외한 모든 삼라만상이 적으로 변해버린다. 어떻게 그 많은 적과 싸워 이기려 드는가.
정말 골프를 즐기고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내부에 만들어둔 외부의 모든 적을 없애야 한다. 적을 죽이라는 뜻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들어앉은 외부의 적을 지워버리라는 뜻이다. 남은 일은 나를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벌여나가는 것인데 나 자신마저 적의 리스트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면 최상의 경지가 될 것이다.
승리 뒤에는 언제나 견딜 수 없는 허망함이 찾아오고 패배 뒤에는 언제나 쓴맛과 함께 새로운 열정이 솟아난다. 왜 그럴까. 아마도 승리가 우리로 하여금 똑같은 행동을 지속하도록 부추기는 반면 패배는 방향전환의 전주곡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패배는 개혁적이고 승리는 보수적이다. 승리로부터는 결코 배울 것이 없고 실패를 통해서만 배움을 얻을 수 있다. 매번 쓴맛을 보면서도 골프채를 집어던지지 못하는 것은 패배의 이런 속성 때문일 것이다.
법구경은 더 나아가 아예 이기고 지는 것 자체를 모두 잊으라고 가르친다. 「이기면 남에게 원한을 사고 지면 스스로 비굴해지나니 이기고 진다는 마음 버리고 다툼이 없으면 스스로 편안하리」
방민준 편집국부국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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