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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의 한순간] 심상대 '늑대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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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의 한순간] 심상대 '늑대와의 인터뷰'

입력
1999.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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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나는 소설가야말로 일체개고 제행무상(一切皆苦 諸行無常)이라는 삶의 본질을 희화적으로 은유해내는 광대(廣大)나 광인(狂人)으로, 아주 잡스런 몸짓의 유머리스트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소설가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부류로 배우라는 직업인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천부적으로 삶의 본질에 대해 간파하고 있으면서, 그 깊은 슬픔의 수렁에서 한 톨의 희망과 한 줌의 위락을 건져올려 사람들에게 드린다.올해 초에 발간된 어떤 잡지의 표지에는 한 아름다운 여배우의 사진이 실려있다. 긴 머리카락과 볼 사이에 오른손을 밀어넣고서 빗긴 시선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다. 그녀의 목이 시원스럽게 드러나 보이고, 왼쪽 어깨에 걸친 드레스 자락 아래로 레이스 속옷 끈이 살짝 엿보인다. 사람들로서는 눈여겨 보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의상 연출은 우연이 아니라 우연을 가장한 그녀의 의도된 유머였다.

내가 이 여배우를 만난 건 소설 속에서 뒤틀어 진술한 대로 그녀가 표지 모델로 나선 잡지의 커버 스토리를 쓰기 위함이었다. 내가 커버 스토리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그녀에게서 배우로서의 천부적 재능과 겸허한 헌신, 그리고 한 여성으로서의 힘과 생기를 발견하고 깊이 감동하였다. 내가 그녀를 늑대에 비유하면서, 여성성의 원형과 인간회복의 메시지를 그녀의 이미지에 대입하고자 한 이유가 그렇다.

커버 스토리를 다 쓰고 나자 그녀와 나눈 원고지 팔십 장 분량의 대화가 몹시 아까웠다. 그래서 나는 「늑대와의 인터뷰」(솔 발행)라는 소설에서 하은영이라는 갓 이혼한 여배우를 등장시켜 여성성의 원형과 그 원시적 본능을 말살하고자 하는 「허위에 가득 찬」 인간관계와 남성주의 사회의 폭력성에 대해 말하도록 하였다. 아울러 나라는 등장인물도 처조카와 불륜에 빠진 소설가로 설정했다. 인터뷰한 그녀가 미혼이듯이 나 역시 처조카와 불륜에 빠진 적은 없다. 그 여배우가 아니라 소설의 주인공 하은영은 소설가인 내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내가 다시 물었다.

『슬플 때는 있습니까』

그녀는 즉각 대답했다.

『항상 슬퍼요, 사는 게 슬퍼요』

나는 소설을 쓰면서 레이스 속옷 자락을 살짝 드러내 보이는 위트로 생의 내면을 유머로 돌올시키던 한 아름다운 여배우의 진정을 생각했다. 소설 속의 내가 비록 경망하고 잡스러워 보일지라도 독자들에게 한 가닥 위안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다면 다행이라 여겨졌다. 책이 나온 뒤 나는 그 여배우께 전화해서, 혹시 누가 되었을지 모르니까 한 번쯤 소설을 읽어보라고 말했다. 그녀는 경쾌하게 『뭘요, 그건 소설인 걸요』하고 말했다.

/심상대 소설가·작품집 「묵호를 아는가」 「늑대와의 인터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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