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하류에서 환경호르몬 비스페놀-A가 검출됐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떠오른 생각은 슈퍼마켓에서 비싼 생수 병을 집어드는 부산 주부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미 부산에선 수돗물을 그냥 식수로 마시기를 포기 하고 지하수나 생수를 마셔왔다고 그곳 사람들이 전해준다.두부가 유전자 변형 콩으로 만들어졌다는 소비자보호원의 발표에 두부 판매가 격감했던 것을 생각할 때 부산사람들의 수돗물 공포증은 결코 과장된 말로 흘려버릴 일은 아니다.
얼마 전에 낙동강 물 관리 종합대책을 놓고 김명자 환경부장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책에 대한 신념은 강했으나 현지 주민들의 무력시위로 공청회가 세 번이나 무산되고 난 후여서 장관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공청회도 못 여는 판에 환경부인들 정치,경제,지역감정으로 꼬인 낙동강문제를 해결 하기란 대단히 어려워 보인다.
정부가 내놓은 낙동강 물 관리 대책은 작년 우여곡절 끝에 실행에 들어간 「한강모델」과 비슷하다. 오염 총량제와 물이용 분담금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한강과 다른 점은 여러개의 댐을 만들어 갈수기에 물을 흘려보냄으로써 강의 자정(自淨)능력을 키운다는 것이다.
갈수기 유량이 한강의 25%밖에 안 되는데다 대구같은 대도시와 유역의 산업시설을 씻고 흘러오는 강물을 희석하고 정화하기 위한 방안이다. 많은 전문가들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상도 현지의 갈등은 심각하다. 부산 마산지역을 위해 우리가 희생할 수 없다는 상류의 댐 후보지 주민들은 이미 실력으로 정부의 기를 꺾어 놓았다.
더 큰 문제는 위천공단을 둘러싼 대구와 부산의 갈등이다. 지난 25일 낙동강 물 관리의 법제화를 위해 열린 부산 경남지역 여당의원들이 참석한 당정회의 가 열렸다.
여기서 『낙동강수질 개선은 위천공단문제 해결과 병행해야 한다』(박철언 의원)는 대구 쪽 주장과 『낙동강 수질개선을 먼저 추진하자』(김운환 의원)는 부산의 반박은 접근할 수 없는 평행선을 긋고 있다.
더구나 부산이든 대구든 한 나라당이 대표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고전적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하면 문제를 풀기보다는 낙동강의 굽이만큼이나 복잡다기해질 판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해법은 하나ㅡ낙동강을 먹고사는 1,300만 경상도 사람들이 자치능력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부산 대구 경남 경북사람들이 이해관계를 조절하여 타협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이 지역 지자체들이 상설협의기구를 설치하는 일이다. 공청회는 여론수렴 방법으로 필요하나 궁극적인 해법은 못된다.
물분쟁을 둘러싼 상류와 하류의 갈등은 국경과 민족을 달리한 나라간에도 해결하는 곳이 생기고 있는데 같은 영남사람끼리 못할 이유가 없다. 상류와 하류가 계속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경상도 사람들이 낙동강 문제를 스스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서울을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문제는 21세기의 중요한 이슈이며, 그 핵심은 양(量)과 질(質)의 문제다. 낙동강은 바로 이런 딜레마를 안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상류와 하류의 경상도 사람들이 자치능력으로 이 문제에 타협을 이루고 정부가 전폭적인 재정 지원으로 낙동강을 살린다면, 세계 물분쟁지역들이 배우고 싶어할 「낙동강 모델」이 될 것이다.
정부는 임기나 총선을 떠나 낙동강 문제가 주민의 자치적 합의와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해결되도록 예지를 발휘해야 한다. 환경과 관련된 정부시책이 브레이크에 걸리는 이유중 하나는 정부가 환경비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어떤 행사에 참석하는지를 보면 그 정부의 정책의 무게를 읽을 수 있습니다. 환경과 관련된 행사에서 대통령의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고 지적한 환경관련 원로학자의 지적은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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