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숙씨의 문건 공개에 이어 26일 신동아그룹측에 건네진 사직동 최종보고서마저 공개되면서 온나라가 옷로비 문건 파문에 휩싸였으나, 정작 옷로비 특검팀은 관련자 소환없이 정일순씨에 대한 영장 범죄사실 보강 등 일상업무에 몰두했다.특검팀의 평온한 분위기는 「문건의 진실」과 「밍크코트의 진실」은 별개의 문제라는 수사방침에 기인하는 것이다. 옷로비사건의 실체파악이 수사의 본질이지 문건에서 파생된 권력기관의 은폐·축소여부는 특검의 수사대상을 벗어난 것이라는 현실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문건의 전달자인 김태정 전 법무장관 부부의 자진출두가 있은 24일 최병모 특검은 『그사람들이 원해서 온 것』이라며 『문건의 출처에 대해 추궁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한발 비켜서는 모습을 보였다. 양인석 특검보도 26일 제2의 문건이 공개된 사실을 접하고, 『스스로 나오겠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지만 문건이 수사의 핵심은 아니다』며 박자를 맞췄다.
양특검보는 이어 이문건과 관련,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묻는 기자들에게 『이제 우리가 부를(소환할) 필요가 있겠나』고 반문한 뒤 『당사자가 확인, 시인한다면 부를 필요가 없다』고 수사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지난 16일 정일순씨에 대한 법원의 영장기각 후 특검팀이 이은혜씨의 전화통화 녹음테이프와 배씨소유의 문건 확보 사실을 공개하면서 보였던 기세와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특검팀의 이같은 모습은 그동안 수사방향에 대한 팀내 논쟁에서 양특검보를 비롯한 현실론자가 힘을 얻으면서부터 가시화됐다. 특검팀은 수사시작 후 수사진행을 앞질러 나가는 언론보도에 대한 부담에다 문건을 수사대상으로 보느냐는 판단문제로 격론을 벌였다.
「국민적 의혹 해결이라는 대전제 하에서 국가기관이 포함되더라도 문건출처를 수사해야 한다」는 원칙론과 「특검법상 국가기관에 대한 수사는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현실론간의 대립은 25일 한때 일부 수사진의 사퇴설까지 낳을 만큼 치열했으나 수뇌부의 진화로 봉합되었다.
손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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