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충격과 경악의 세기말을 살고 있다.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역임한 인사가 부인과 함께 나와 눈물의 고백을 하는 광경은 놀랍다 못해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나라가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검찰총장이 국가기관의 내사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옷로비관련 조사보고서를 입수하여 그 의혹의 장본인인 부인에게 건네주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룩했다」 「경제위기를 2년만에 극복했다」는 이 나라의 체면을 무참히 깎아 내렸다. 사고공화국에 이어 「거짓말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받지나 않을는지 걱정이 앞선다.
이 사건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보다도 당초 「옷로비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는 데 있다.
특별검사의 존재이유가 입증된 것이다. 그런데도 김태정(金泰政)씨는 조직의 장래와 전직 검찰총장의 신분을 핑계로 문건의 출처를 함구했다. 조직을 비호하려는 태도가 역력했다. 그의 「용기있는」 고백에도 불구하고 눈물의 의미를 평가절하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정작 당사자인 검찰이 김씨의 배려에 감사할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왜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가서 고백을 해 이 모양을 만들었는가」 또는 「조직의 장래를 생각하는 사람이 조직의 위신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고 마는가」 등 불만을 토로하고 있을 것이다. 또 경험에 비추어 김씨의 함구로 그 문건의 출처가 드러나지 않고 검찰조직의 장래가 보전되리라고 믿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그의 고백은 검찰이나 집권당, 정부, 대통령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진실과 허위의 경계를 변경시켰을 뿐만 아니라 골수까지 맺힌 「조직보호의 본능」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는 역설적 기여가 크기 때문이다. 아전인수식의 조직보호 본능과 사명감은 변화된 환경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의식이 결여된 조직에게는 아무 것도 약속해 주지 못한다.
잘못된 보호본능은 오히려 검찰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무너뜨림으로써 검찰조직 자신에게도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이 자명한 교훈을 확인하기 위하여 더 이상의 체험이 필요한가.
이제 김씨가 함구한 부분을 밝히는 것은 특별검사의 일이다. 그 동안 「옷로비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특별검사의 발목을 잡으려는 이런 저런 시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마당에 행여 특별검사의 조사권 유무와 범위를 논란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될 일이다.
검찰 또한 특별검사제의 도입여하를 조직의 사활을 좌우하는 문제로 인식하여 총력저지에 나섰던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사건에 대해서는 특별검사가 수사를 하도록 하는 것은 검찰 「조직」을 위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역설적 교훈이 있다. 김씨의 고백은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집권초기부터 검찰문제로 발목을 잡히게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검찰을 믿었다. 아니 특히 김씨를 신뢰하여 중용했다.
검찰이 날개를 달면서 정치문제를 검찰차원에서 해결하려는 듯한 「검찰정치」의 폐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특정 개인의 중용에 대한 대통령의 판단이 옳은 것이었는지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그것과 오늘의 검란을 초래한 일련의 사건 처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권 초기부터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선다」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검찰인맥에 둘러싸여 검찰에 개혁으로부터의 면죄부를 부여한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법무부와 검찰은 지난번 정부개혁과정에서 조직보호본능으로 무장하여 사법개혁과의 연계전략을 구사함으로써 개혁을 모면할 수 있었다. 대통령은 이제 다시 법무부와 검찰의 개혁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검찰 역시 스스로 개혁하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제 말을 고치자. 「검찰이 개혁되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
홍준형·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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