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나라 궁중무용을 정재(呈才)라 한다. 정재는 「재주를 바친다」는 뜻으로 춤뿐 아니라 땅재주, 줄타기 등 모든 예술적 재능을 아우르던 것인데차츰 궁중춤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민속춤의 흐드러진 멋과 달리 정재는 절제와 품격의 장중한 아름다움이 특징이다.국립국악원이 매년 한 차례 마련하는 정재제전은 정재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는 귀한 무대이다. 올해 정재제전 「궁중의 한나절 정취를 찾아서」가 25·26일 오후 7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다. (02)580-3300
현재 전하는 정재는 50여종이 있는데 이번에 하는 것은 쌍무고, 춘앵전, 수보록, 영지무, 왕모대가무이다. 한국 궁중무용의 산 증인 김천흥옹의 고증을 바탕으로 원형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그동안 쌍무고나 춘앵전은 자주, 수보록과 영지무는 가끔 했지만, 왕모대가무는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왕모대가무는 요즘의 매스게임처럼 군왕만세 또는 천하태평의 네 글자를 만들어가며 추는 춤이다. 본래 55명이 추게 돼 있는 것을 40명으로 줄여 한다. 쌍무고는 두 개의 북을 가운데 놓고 빙 둘러선 채 북을 두드리며 춘다. 춘앵전은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 앵삼에 화관 차림으로 여섯 자 화문석 위에서 혼자 추는데, 궁중무용 중에서도 우아함의 극치로 꼽힌다. 수보록은 춤꾼들이 죽간자(긴 장대에 대나무살을 꽂아만든 장식물) 등 저마다 다른 의물을 들고 형태를 구성하며 움직여가는 구도가 이채롭다. 영지무는 네모꼴 연못 모양을 가운데 두고 3명씩 마주 보면서 추는 춤이다.
이번 공연은 춤을 그저 쭉 나열하는 게 아니고 옛날 대궐 뜨락으로 돌아가 그 시절 정취를 되살리는 데 특징이 있다. 저녁부터 이튿날 이른 새벽-아침-점심-이른 저녁으로 이어지는 시간 흐름에 따라 춤을 배치한다. 예컨대 춘앵전은 이른 새벽의 춤이다. 조선 순조(1800-1834) 시절 어느 봄날 새벽, 꾀꼬리 지저귀는 소리에 밖으로 나온 효명세자가 꽃그늘 아래를 걷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시를 읊고 그것으로 「춘앵전」을 짓게 했다. 따라서 시를 노래하며 춤추게 돼있다. 이처럼 정재에는 창사(唱詞·가사가 있는 노래)가 따른다. 창사는 무대 뒤에서 따로 하곤 했는데 이번엔 춤꾼이 직접 부른다.
정재는 대궐 잔치에서 격식을 갖춰 추어졌다. 예컨대 외연(왕이 여는 잔치)은 1작에서 9작까지 순서에 따라 정재를 춘다. 1작은 왕세자가, 2작은 고관이, 3작은 여러 신하가 왕에게 잔을 올린다. 정재는 2작에서 왕의 분부가 내려진 다음 비로소 음악과 함께 시작돼 9작까지 그때그때 다른 춤을 행한다.
정재는 왕 앞에서 추기 때문에 고상하고 우아하면서 무겁고 예를 갖춘 동작,그리고 절도 있으면서 화사한 춤사위로 되어있다. 대궐의 춤인 만큼 춤꾼의 옷차림과 무대 치장이 또한 화려하다. 음악으로는 보허자 낙양춘 영산회상 여민락 수제천 천년만세 등을 쓴다. 이번 무대에는 국립국악원 무용단 40명과 정악단 22명이 출연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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