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종문화회관은 대중 연예인들에게 금단(禁斷)의 철옹성이었다. 코미디언 최초로 세종문화관에 서는 사람이 있다. 이주일(59), 사람들은 그를 「코미디 황제」 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가 30년 코미디언 인생을 정리하는 공연을 29일부터 12월 1일까지 갖는다.「이주일 울고 웃긴 30년」 공연 안내 포스터의 제목처럼 이주일은 30년 동안 무대에서, 브라운관에서 그리고 스크린에서 울고 웃겼다. 무명시절까지 포함하면 40년 세월이다. 『사랑해주신 분들에게 조그마한 기쁨을 주는 자리지요. 수차례 공연신청을 거절당했던 세종문화회관에서 30년 코미디언 인생을 정리하게 돼 기쁩니다』 SBS 「이주일 투나잇쇼」를 지난해 4월 끝내고 1년 7개월 만에 대중 앞에 다시 나선 이주일은 『전회 매진 기록을 세울 겁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하지만 코미디 황제에게도 새 공연은 긴장과 설렘으로 다가온다. 분당 자택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연습실을 오가며 두달째 땀흘리며 연습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한 5개 코믹 드라마, 30년 동안 만났던 백명의 이야기, 그리고 이선희 정수라 전원주 등 가수와 동료들과 함께 벌이는 노래와 춤의 무대로 꾸며진다. 『지금은 잊혀진 극장식 무대와 리사이틀 형식에 나의 삶을 녹여내 선보일 예정입니다』
황제는 그냥 얻어진 칭호가 아니다. 궁핍과 가난으로 힘들었던 시절, 그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연예인이 되는 것이었다. 60년 무작정 유랑극단을 따라 나섰다. 무명시절은 길고 가혹했다. 가수 남진쇼의 보조 진행자로 내정됐다 차가운 겨울 거리로 아무 이유없이 쫓겨난 일도 있다. 『69년 파월장병 공연을 연기생활 출발점으로 삼아요. 유명 연예인들은 후방에서 공연하는데 무명인 저는 최전방에서 몇사람만 앞에 두고 했지만 참 보람있었지요』
성공한 지금도 무명시절의 금호동 판잣집, 흰쌀죽 한번 못먹고 돌아가신 아버지, 출산한 아내에게 미역국조차 끓여주지 못한 일 등 궁핍의 기억들이 이주일을 짓누른다.
그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79년 하춘화쇼에서 백금녀가 맡았던 향단역에 대타로 뛰면서부터. 차츰 서민들에게 이름이 알려졌고 80년 TBC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은 그를 불과 2주 만에 「국민 코미디언」으로 부상시켰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의 유행어와 함께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전두환 전대통령과 모습이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방송 출연을 1년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인기는 식지 않았다. 때로는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며 식상한 연기를 보일 때도 있었지만 코믹한 연기와 용모는 서민들의 가슴을 울리고 웃기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92년 국회의원으로의 변신은 의외였다. 그리고 코미디언이 무슨 정치냐며 무시하는 동료의원들 사이에서 4년간 의정생활을 했다. 『정주영회장의 권유와 당시의 상황이 저에게 정치를 하게 했지요. 열심히 공부하며 의원생활했지만 역부족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다시는 정치 안할 생각입니다』
시대가 변했다. 후배들의 개그에 그의 코미디는 밀린다. 하지만 서민들의 추억 속에서 그의 코미디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래서 존재의미가 있다. 『부모들이 자식에게 저 사람은 존경할 만한 코미디언이었다는 말을 해 줄 수 있는 연예인이 된다면 제 인생은 진정 성공한 거지요』 특유의 엉거주춤한 춤을 연습하며 땀을 흘린다.
70년대말 가수 화춘화쇼에서.
80년대 인기절정일 때 여장 차림.
92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날.
97년 SBS 「이주일 투나잇쇼」 진행 때.
30년 무대생활을 정리하는 공연을 앞둔 이주일.
배국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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