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숙씨가 22일 옷로비 조사문건을 전격 공개함에 따라 이 사건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나고 있다. 특검팀 관계자는 『옷로비 소문 직후 조사가 이뤄진 탓인지 사건의 실체에 가장 근접한 문건으로 보인다』고 말했다.특검팀은 문건과 관련자 조사를 통해 이 사건 실마리를 이씨의 행적에서 찾고 있다. 당시 이형자씨가 외화도피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있는 남편(최순영 전신동아그룹회장)의 구명을 위해 각계에 로비를 벌인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씨가 지난해 10월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씨를 찾아가 『고위층과 친분이 깊으니 잘 말씀드려달라』고 부탁한 뒤 밍크코트 등을 구입한 행동이 로비와 관련있다는 것이다. 또 이씨가 『당신(정일순)이 영부인을 잘 알고 있으니 선처토록 부탁드려달라』고 요구하고, 배씨를 만나 『(우리)사돈네만 걱정하지 말고 우리도 좀 도와달라』며 부탁한 점으로 미뤄 이씨가 단순히 정씨와 배씨의 유도에 휘말린 것만은 아니라는게 특검팀의 분석이다.
특검팀은 정씨와 배씨의 경우 이같은 이씨의 처지를 이용, 사익을 챙기려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정씨가 『연씨에게 선처를 부탁하겠다』며 이씨에게 옷값 1억원을 요구, 판매이익을 챙기려 한 혐의는 이미 포착됐다. 작년 12월18일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검찰총장부인이 내일 오면 옷값이 수천만원 나올텐데 옷값을 내달라』고 요구하거나, 호피무늬코트 배달 이튿날인 21일 『옷값을 대납하라』고 전화로 계속 재촉한 점 등이 정씨의 알선수재혐의를 입증하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문건 폭로자인 배씨 역시 이씨와 사돈인 조복희씨, 연씨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하며 연씨의 힘을 빌려 이씨와 조씨의 남편에 대한 수사를 무마하려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배씨는 이와 관련, 이미 이씨에게 2,400만원 옷값대납을 요구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상태다.
특검팀은 연씨의 경우 실제로는 로비를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문건을 보면 당시 라스포사에 연씨와 동행한 배씨와 이은혜씨가 『호피무늬코트를 여러 사람이 입어봤는데 연씨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는 의견이 있어 연씨가 외상으로 구입해간 것』이라고 진술했고, 이는 의상실 종업원 이혜음씨나 정씨의 말과도 일치한다.
결국 호피무늬코트는 연씨 몰래 배달된 것이 아니라 연씨가 직접 가격을 흥정, 외상으로 구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특검팀 분석이다. 그러나 당시 IMF 상황에서 값비싼 코트를 샀다는 사실을 공개할 경우 난처한 입장에 빠질 것을 우려한 연씨가 「진실」을 감추려고 말을 계속 바꾸다 스스로 「늪」에 빠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박정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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