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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고도를 기다리며' 일본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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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고도를 기다리며' 일본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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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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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내리자마자 터져 나오는 박수가, 여기서는 없어야 「고도를 기다리며」는 진정 성공했다고 봐야죠』 에스트라공 안석환(41)이 공연 전 건넸던 말은 그러나 보기좋게 빗나갔다.21일 오후 1시 30분 일본 도쿄 스기나미구(衫 區) 종합문화센터내 「세션 스기나미」 극장에서 펼쳐졌던 극단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 23일까지 모두 세 차례 펼쳐지는 일본 공연의 첫 날이다. 69년 창단작으로 30년 동안 700여회 올렸던 작품이지만, 일본 공연은 이번이 처음.

국내 공연과 다른 점은 무대 상단 소형 스크린의 일본어 자막 처리뿐이다. 568석을 거의 메운 관객들은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고도를 기다리다 지쳐 맥없이 축 늘어지는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기다렸다는 듯 소나기 박수를 퍼부었다. 커튼콜의 환호는 이미 예고돼 있었다.

공연 내내 끊이지 않던 크고 작은 웃음보들. 거드름 피우는 포조(김명국·37)에게는 폭소가, 종종걸음으로 무대를 분주히 오가는 귀여운 버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한명구·40)에게는 웃음의 잔물결이 끊이지 않았다. 럭키(정재진·46)가 3분 30초 동안 숨쉴틈 없이 혼자 심각하게 지껄이는 대목에서 관객들은 과연 뭐가 나오나 하고 조마조마 숨죽이고 있다, 후반부로 접어 들자 하나둘씩 웃음에 감염돼 갔다. 언어의 벽은 무의미했다.

이번 공연은 한국 연극하면 오태석·이윤택 등 한국적 정서를 변용한 창작극만 떠올리던 일본에게 거는 「스탠더드 연극」의 첫 승부. 『한국의 「고도」는 왜 이리 재미 있나』 97년 서울연극제 당시 일본의 연극계 인사 60여명이 와서 특별초청작이었던 산울림의 「고도」를 보고는, 이구동성으로 터뜨렸던 소감이 일본의 일반 관객에 의해 확인된 것이다.

『코믹과 지성을 교묘히 융화시킨 연출의 힘이 가장 크다고 봐요. 또 언어의 벽을 뛰어 넘는 배우들의 무용적 연기 수준 또한 그에 버금가죠. 무대 가득 한국의 「피」가 느껴집니다』 평론가이자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인 센다 아키히코(扇田昭彦·67)씨의 평이다.

대본만으로는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연극을 일본인들은 교겐(狂言)이나 만담극 등으로 나름대로 소화해 내려 애쓰고 있다. 원로 평론가 이시자와 슈지(石澤秀二·69)씨는 그러나 『자기류의 양식화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한다. 그같은 일본식 「고도」에서 일본 관객들 또한 침묵 속에서 관극할 뿐이라며 공연 풍경을 전한다. 『한국인들이 고도에 열광하는 것은 「고도」를 남북통일로 보기 때문』이라는 색다른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스기나미구 문화교류과장 노자키 후미오(野崎文夫)씨는 공연후 산울림극단과 일본연극인 40여명이 가졌던 리셉션 행사에서 『한국의 공연은 섬세하면서도 아름답다』며 『주민 요청으로 한국 영화 「묵시록」을 상영키로 돼 있다』고 말했다. 스기나미구는 도쿄의 23개 구 가운데 문화예술인 밀집거주지역.

극단 산울림은 이번 방일 공연에서도 관객과의 대화를 거르지 않았다. 관극후 설문지를 돌려 반응을 분석하는 한편, 마지막 공연일인 23일 일본의 국제연극협회는 대학생 30명을 뽑아 관극하게 한 후, 임영웅·안석환씨를 게스트로 해 대화를 가졌다. 유연하고도 귀여운 몸동작의 안석환은 첫날 공연후 구민회관홀에서 치러졌던 리셉션 행사부터 총아로 떠올랐다.

산울림의 「고도…」는 이미 아비뇽(12회), 파리(1회), 더블린(3회), 그다니스크(3회) 등 모두 19차례의 해외 공연을 치러, 『산울림의 고도는 옳았다』는 등 현지의 찬사를 받아 왔다. 이번 일본 공연은 23일까지 모두 세 차례 펼쳐졌다.

일본 관객의 커튼콜에 응답하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중앙부 위가 자막 스크린.

도쿄=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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