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전경린의 소설 「내 생에 꼭 하루 뿐일 특별한 날」
이 세상의 도덕과 풍속의 바탕은 안전제일주의인 것으로 보인다. 바람은 반드시 몰래 피우게 되어있다. 러브호텔 주차장은 너덜거리는 비닐막으로 가리워져있다.
그 비닐막이 고객의 승용차를 대낮의 시선으로부터 차단시킨다. 어느 도시 어느 거리에서든지 러브호텔 주차장의 비닐막은 바람에 흔들린다. 바람은 기어코 은밀하기를 도모하지만, 그 은밀한 정념들이 모여서 이루는 사회적 풍경은 공공연하다. 은밀한 짓들이 공공연히 이루어진다. 바람은 이제 은밀한 공공연함이고, 공공연한 은밀함이다. 그러므로 바람을 피우는 남녀나 바람을 쏘이는 남녀들에게 「보안」은 가정 평화의 요체이다.
거짓은 세상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해준다. 안전제일주의의 풍속을 이탈하려는 또다른 풍속 조차도 안전제일주의로 관리된다. 그러니, 좀 삐걱거리기는 하지만 세상은 결국 굴러가던 방식대로 굴러가긴 굴러간다. 일부다처제도는 중세의 안전제일주의였고, 일부일처제도는 현대의 안전제일주의다. 한 남자에 여러 여자건, 그 반대건, 아니면 지금처럼 하나에 하나씩이건 간에 이 세상은 거대한 보험회사와도 같다. 하나에 여럿씩이 빚어냈던 문제들을 하나에 하나씩이 완벽하게 문명사적으로 해결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도덕이 풍속을 이룬다기 보다는 이 보험제도가 풍속을 이룬다.
퇴근하는 길에 걸음을 멈추고, 저녁장사로 성업 중인 러브호텔 주차장의 비닐막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불륜」은 도덕의 반대말이 아니라 풍속의 반대말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풍속과 풍속 사이에 러브호텔 주차장의 비닐막은 드리워져있다. 이 비닐막이 풍속들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편안함의 장치라고 말하면 이나라의 수많은 엄숙주의자들이 화낸다. 안된 일이지만, 화를 내도 별 소용이 없다. 세상은 이 비닐막을 걷어낼만한 힘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세상은 그래도 웃음을 웃을만한 세상이다. 룸라이트를 끈 자동차들이 이 비닐자락을 스치고 밖으로 나와서 거리의 차량대열에 섞인다.
전경린 소설 「내 생에 꼭 하루 뿐일 특별한 날」은 전국 중·소·대도시와 농어촌과 산간마을에 골고루 들어선 이 러브호텔 외양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의 차는 기차역이 있는 소읍을 지나 국도변의 한 모텔로 들어갔다. 희디흰 인조석 벽 모서리에 빨간색의 풍차날개가 달려있고 방마다 둥근 발코니가 달린, 부조화하고 기묘한 모텔의 이름은 「초원의 빛」이었다」
둥근 발코니는 서유럽풍이고 풍차날개는 북유럽풍이다. 시골 소읍을 조금 벗어난 국도변에 이 러브호텔은 장난스럽게, 그러나 절박한 표정으로 들어서 있다. 소설 속에서처럼 발코니와 풍차날개의 모자이크도 있지만, 소설 밖의 국도연변에는 페르시아풍의 돔 지붕도 있고 디즈니랜드풍의 뾰족지붕도 있고 전통 한옥풍의 팔각지붕이나 맛배지붕도 있다.
전경린 소설 속의 젊은 유부녀는 위태롭다. 그 여자의 관능은 보험에 가입되어있지 않다. 그 여자는 욕망을 통과하는 일로서 세상을 통과하려 한다. 욕망은 다급할수록 비현실적이고, 그 여자는 그 다급함과 비현실 사이에서 위태롭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 여자의 욕망은 자족적(自足的)인 것이 아니다. 그 욕망은 자족의 평화를 꿈꾸면서도 상대를 갈구한다. 상대가 현실이고 욕망이 비현실인 것이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다. 그 여자의 생명은 현실과 비현실을 함께 끌어 안아서 녹인다. 그리고 거기가 바로 그 여자의 관능이 숨쉬는 자리다.
그 여자의 모순은 가엾어 보인다. 그 여자의 몸은 「슬프고 거북하고 참을 수 없도록 부드럽고 낯선 욕망에 가득찬 몸」이다. 그 모순은 동료 중생들의 이름으로 연민받을 만하다. 이 갈구가, 이름하여 사랑인가 아닌가. 아마도 이 언저리 쯤에서 전경린 소설에 대한 불륜과 통속의 시비는 비롯되는 것 같다. 이 시비걸기는 매우 쉬워 보인다. 유부녀의 간음은 불륜이고 삼각치정의 중복 구조는 통속인 것이다. 그러니 무슨 시비가 더 필요하랴. 여자의 생명을 조여들어가서 그 관능 속에서 명멸하는 알레그로 비바체 문장의 힘이 아니었다면, 이 소설은 한바탕의 진땀나는 불륜치정에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유혹의 씨앗은 남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그 운명을 낯설어하는 여자의 내면에 있다. 이 세상의 안전제일주의에 상처받은 여자에게 이웃에 사는 속물스런 건달 사내가 접근한다. 그 사내가 기회를 엿보아 여자에게 묻는다.
『괜찮아요?』 라고.
이 물음은 어느 특정부위의 상처의 안부를 묻고있지 않다. 이 물음은 모호하고 포괄적인 물음이고, 여자를 홀리려는 건달 사내의 물음이다. 이 물음은 바람처럼 무의미하게 스쳐가는 물음이고, 아무런 답변도 기다리고 있지 않은 불성실한 물음이지만, 삶과 관능 전체의 안부를 묻고있는 무서운 물음이다. 속으로 피를 흘리는 여자에게 이 모호한 물음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사랑이 그 유혹에 반응하기 전에, 상처가 거기에 반응한다. 상처는 「부드럽고 낯선」 관능을 거느리고있다. 그 여자는 무너지면서 피어난다.
「나는 괜찮다는 표시로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내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한꺼번에 흘러내려버릴 것 같은 가파른 벼랑이 느껴졌다」
그때, 세상은 멀어져가고 사람들이 매달려서 쩔쩔매던 조건들의 남루함과 하찮음이 정체를 들어낸다. 세상이 물러간 빈터에는 먼지가 일고, 그 여자의 여성성이 그 먼지길을 건너가는데, 그여자의 마음 속에서 「덧없고 경쾌한」 캐스터네츠 소리가 울린다. 인간이 외롭고 불행하다는 것은 더이상 어떻게 손 대 볼 수 없는 「자명한 사실」임을 그 여자는 안다. 그 여자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이 세상으로부터 제외된다. 욕망과 더불어 세상을 통과하는 일에 그여자는 실패했다. 그 여자는 세상의 끄트머리에 겨우 붙어서 존재하고, 그 여자를 제외시킨 세상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고 새면 날마다 무사한 것이다.
세상에서 제외된 그 여자가 이 보험에 든 세상을 향해서 묻는 것 같다. 괜찮느냐고, 당신들의 생명과 더불어 다들 괜찮느냐고, 보험은 잘 굴러가느냐고. /김훈기자
■소설 줄거리
나는 30대 초반의 유부녀다. 남편의 사업은 오그라졌고, 남편의 감추어 둔 젊은 애인이 집에 찾아와서 행패를 부렸다. 가정은 거짓말처럼 순간에 무너졌다. 『사람이 왜 허무해지는지 아니? 삶이 하찮기 때문이야』라고 나는 남편에게 대들었다.
남편과 나는 도회지 생활을 정리하고 바닷가의 작은 마을로 이사했다. 이사간 마을의 이웃에 중년 남자가 혼자 살고 있었다. 그 사내는 이 마을의 사설 우체국장이었다. 여러 여자를 거친 듯 했고, 다소 건달기가 있었으며, 삶의 진지함을 믿지 않는 남자였다.
그 사내가 나에게 『괜찮아요?』라고 물었다. 물었다기 보다 그런 모호한 방식으로 나를 유혹했다. 나는 이 사내에게 빨려 들어갔다. 나는 사랑을 갈구했지만, 그것이 사랑인지는 말하기 어려웠다. 두려움과 기쁨에 가득 찬 내 삶을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질 때, 심장 깊숙히 내 몸의 가난이 느껴졌다. 국도변 모텔에서 나는 그 사내와 몸을 섞었다. 그런 일이 자주 있었다. 남편에게 들키자, 남편은 나를 심하게 때렸다. 그 사내와 모텔에서 나와서 국도를 달리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남편은 어디론지 떠나고, 그 사내도 떠났다. 나는 이 바닷가 시골 소읍에서 지금 혼자 살고 있다. 언젠가는 이 바다를 건너서 맨 처음으로 가고 싶다.
■전경린 인터뷰
한국일보뉴스
1999/11/22(월) 17:36
_구도를 말하자면, 이 소설은 통속적이다. 소설 속에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기」로 벌리는 게임은 장난스럽지 않은가.
『이른바 「불륜」은 통속적이어도 하는 수 없다. 그 통속성을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문제와 결부시키려 했다. 「게임」은 허용될 수 없는 연애를 허용될 수 있게 하는 기본틀로서 설정했다.
_당신의 소설 속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적대관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로 간절히 필요하고 또 가깝게 공존하는 관계 속에는 적대관계가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얼마나 힘든 관계일 것인가』
_비현실 속에 이른바 「사랑」은 자리잡는 것인가.
『욕망을 비켜가지 않고, 그것을 정직하게 통과하면서 여기가 아닌 곳으로 가고 싶다. 추억의 힘 만으로 연애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추억이야말로 비현실이다. 어디론지 가야하지 않겠는가』
_일부일처제도는 인간에게 무의미한 것인가.
『오래된 삶의 풍속이다. 세상의 기본질서를 유지하려면 그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제도는 인간성의 본질에 맞지 않는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부일처제가 그 대표적인 풍속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하더라도 그 제도의 완강함, 그 철벽같은 강고함, 다른 모든 관계를 모조리 부정해버리는 그 무서운 보편성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이 헐거워지기를 바란다』
_나처럼 일부일처제를 엄격하게 준수하면서 한평생 처자식 벌어먹이느라고 갈팡질팡하다가 늙은 사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하하하. 아무렇게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지리멸렬하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에게는 수많은 존재방식이 있다. 그 방식들 사이에는 우열의 관계가 없다. 어느 방식이 다른 방식보다 잘났거나 못하지 않다. 모든 개별적인 삶에는 저마다 지극한 아름다움과 간절함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것만이 모든 존재양식들의 평등이다』
_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성적체험의 내용을 공유하고, 서로의 내용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보는가.
『어렵고 또 괴로운 얘기다. 아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각자의 내용이 따로따로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_그래서 그 내용이 무엇인가.
『하하. 그것은 매우 급박한 현실이면서도 현실로부터 아득히 멀어지는 것이다. 성을 통해서 연애를 받아들일 때 연애의 무게는 문득 가벼워진다. 나는 그 가벼움을 비현실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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