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그때, 선인들은 그 방대호한한 지식을 어디서 찾아내고 또 어떻게 저장해 두었을까? 「성호사설」은 조선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의 저술이다. 사설(僿說)이란 말은 「자질구레한 이야기」 「하잘 것 없는 이야기」란 뜻이다. 제목은 자질구레하다 했지만, 그 내용은 모두 30권 30책에다 3,007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저술이다. 천지문(天地門)·만물문(萬物門)·인사문(人事門)·경사문(經史門)·시문문(詩文門)의 다섯 갈래로 분류해 놓았다.꼼꼼히 들춰보면 없는 이야기가 없다. 천문 우주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역사 지리 고증, 일상생활의 이런 저런 사물에 얽힌 이야기와 정치 경제에서 사회 제도와 관련된 경륜의 피력, 옛 성현들의 경전과 역사 주제의 새로운 해석과, 역대 시문에 대한 세심한 고증과 비평 등, 당시 지식인들이 품고 있던 관심사와 지적 편력이 행간에 훤히 들여다 보인다.
선생은 이 기록을 다 정리하는데 4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80세가 되어 집안의 조카가 베꼈다고 한 것을 보면, 처음 이 책의 원고는 카드 상태로 주제 분류도 되지 않은 채 상자 속에 한 장 두 장 쌓여 갔던 모양이다. 하나의 항목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메모들이 필요했겠다. 의문이 생기면 그것을 적고, 의문을 풀어줄 단서가 발견되면 다시 책을 뒤지고 현상에 비춰 보아 논거를 보충해서 하나 하나의 항목이 완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어떤 형태의 책을 구상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을 터.
이 책은 「성호사설」 전체를 번역한 것이 아니다. 전체 번역은 22년 전에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국역 성호사설」로 출판되었다. 20년의 세월은 시각을 달리해 새로운 번역이 충분히 필요할만큼 긴 시간이다. 더욱이 전체 항목을 추리고 배열하는 가운데 옮긴이의 생각과 만나게 되는 즐거움도 있다.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되는 힘을 가진 책, 정작 인터넷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살아 있는 정보가 담긴 그런 책을 두고 우리는 고전이라 부른다.
/정 민 한양대 국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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