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본란에서 언급했던 농심배 세계 바둑 최강전에 출전할 와일드 카드 선발 문제가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됐다. 정동식 한국기원 사무총장, 윤기현 상임이사, 한철균 기사회장은 17일 회의를 열고 『올해가 와일드 카드 적용 첫 해인 점을 감안, 전례에 따라 국내 프로기사 가운데 상금 랭킹 최상위자인 유창혁 9단을 와일드 카드로 선정한다』고 결정했다. 바둑계 안팎의 뜨거운 시선을 의식해 가장 말썽의 여지가 없는 「모범 답안」을 작성한 셈이다.바둑계의 일반적인 여론도 『무난한 인선이었다』며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당초 이 문제에 대해 기원측이 지나친 부담감을 갖고 기자단 투표로 할까 어쩔까 고민했던 것이 모두 기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이같은 기원측의 「모범 답안」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과연 한국기원의 결정이 당초 주최측이 새롭게 와일드 카드 제도를 채택했던 본래의 취지에 얼마나 부합하는 것일까 하는 원초적 의문이다. 와일드 카드 제도를 도입한 것은 혹시나 이창호 조훈현 등 절대 강자들이 예선 탈락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 한국팀의 전력을 강화하려는 뜻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소 성적이 떨어지더라도 보다 참신하거나 바둑팬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화제의 인물을 대표로 선발함으로써 기전의 흥행성을 높이려는 것이 기본 취지라고 할 수 있다.
한데 한국기원의 「모범 답안」은 마치 단급 인정 시험의 정답과 같이 무어라 나무랄 데 없는 호착이기는 하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상투적인 착점이라는 느낌이 든다. 한마디로 삼빡한 맛이 없다는 얘기다. 하수들의 바둑에서야 책에 나오는 모범 답안대로 두면 그만이겠지만, 고수들의 바둑에는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하고 참신한 신수가 등장해야 팬들을 매료시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때 혹시나 뜻밖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 두려웠는지 아직도 고지식하게 모범 답안만을 답습하고 있는 한국기원이 진정한 프로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들리는 말로는 기원 측도 이같은 점을 충분히 인식, 다음 기전부터는 철저한 사전 준비를 거쳐 보다 새롭고 참신한 와일드 카드제도를 운영해 나가기로 스스로 다짐했다니 그나마 한가닥 위안이 된다고나 할까. /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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