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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백성노릇 저암ㄹ 힘들구나

입력
1999.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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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이 40여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대한민국의 시계는 제 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뒷걸음질하고 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국가발전전략이나 패러다임을 논의할 겨를도 없고 그럴 분위기도 아니다. 역사의 시계는 잠시도 쉬지 않고 재깍거리는데도 귀를 기울이기 어렵다. 무수한 거짓과 폭로와 상대편 죽이기, 고소·고발 속에 1900년대의 대연말이 덧없이 다가오고 있다.지금 국민들은 신물이 날 지경이다. 며칠 전 국가대표 하키선수였던 김순덕씨가 끝내 조국을 등졌지만 어디 하나 마음 붙일 곳 없는 국민들은 이미 심정적으로 김씨를 따라 이민을 가버렸다. 2년 전 IMF관리체제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눈보라 휘몰아치는 삭풍광야에 벌거벗긴채 내몰렸다. 그리고 시퍼렇게 멍이 들 만큼 세계로부터 종아리를 맞았다.

국가경영의 잘못, 사회제도의 잘못, 각 개인의 잘못된 삶의 방식이 아픈 체벌의 사유였다. 그리고 각계 각층인사들이 저마다 뼈아픈 반성문을 썼다. 그러는 동안에도 IMF가 우리 사회를 일신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나라 전체가 개혁을 이루고 국민들은 사는 법을 고치는 계기가 될 수도 잇을 것이라고 믿었다. 2000년대를 앞두고 IMF는 국가개조에 더할 나위없는 호기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랑스럽게도 금융위기에서 벗어났고, 잘 사는 사람들은 더욱 잘 살고 못 사는 사람들은 더욱 못 사는 사회계층의 양극화현상이 심해졌다. IMF를 불러온 원인은 이미 아득히 잊혀진채 부정부패를 비롯한 사회의 각종 해악은 재빨리 복원됐다. 악의 복원력이 우리 사회처럼 막강한 것도 드물 것이다. 조금 살만해지고 숨통이 트이게 되자 우리는 서로 헐뜯고 자신의 이익과 권리만을 추구하면서 곳곳에서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거기에 또 한 가지를 해냈다는 식의 내실없는 성취감까지 작용한다. 우리나라의 민담과 설화는 흔히 「늘늘이 기와집을 짓고 잘 살았다더라」로 끝나곤 한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아무리 곤궁하고 힘들어도 『옛날 이야기 하며 살 때가 오겠지』하고 참으면서 내일을 기약하는 자세로 살아왔다. 이른바 「만족지연의 훈련」이 잘돼 있는 민족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회는 이완되고 민심은 서로 유리돼 있다. 씨랜드화재참사, 인천 호프집화재참사를 비롯한 대형사고와 고가옷 로비의혹사건, 파업유도의혹사건, 언론대책문건사건등은 사회의 이완현상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게 해준다. 그런 사건들의 진실규명과 수습 때문에 국력은 가뭇없이 낭비·소진되고 있다.

진실이 진실 그대로 정직하게 밝혀지지 않고 지지고 볶는 동안엔 전진은 커녕 제자리걸음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지금의 이 세태는 앞으로 10~20년 후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권력층과 부유층의 추악한 거짓말과 꼴불견행태는 2세들에게 심대한 악영향을 준다.

사모님들이 하나님을 자가용인 것처럼 제 편으로 삼아 무수한 국민들 앞에서 위증을 하고, 국민의 대표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진실보도에 충실해야 할 기자들은 권력주변에 기생하는 사회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렇더라도 다시 한 번 희망을 갖도록 하자. 기왕 시작된 진실캐기 작업은 철저하고 엄정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 작업은 새로운 세기에 값진 유산으로 전해져 거짓과 부정부패가 통하지 않는 사회를 이루는 밑거름이 돼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IMF졸업장일 수 있다.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정나미가 떨어져 하다가도 끝내는 다시 돌이켜 이렇게 마음을 정리해야 하니 이 시대에 착한 백성노릇 하기는 정말 힘들구나. 『메뚜기 이마빡만한 나라에서 백성노릇 하기 정말 힘들다』는게 요즘 유행하는 말이다.

/임철순·편집국 국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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