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창작과비평사 발행)는 그 제목을 「선암사」라는 시의 첫 구절에 따 왔다. 비교적 짧은 시라서 그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 앞/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지난해 여름, 순천 선암사에 들린 적이 있었다. 선암사는 마치 광릉 수목원이라도 되는듯 나무들이 울창했다. 나무뿐만이 아니었다. 대웅전 마당 주변엔 온갖 꽃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파초는 물론 만리향도 피었는데, 마치 꽃들을 위해 선암사가 존재하고 있는 것같았다.
나는 느린 걸음으로 경내를 돌아다니다가 어느 한 건물 앞에 발을 딱 멈췄다. 「해우소(解憂所)」라는 글씨가 새겨진 목조건물 앞이었다. 산사에서 화장실을 근심을 푸는 곳, 즉 해우소라 칭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그 건물이 화장실 건물이라는 것을 당장 알아차렸다.
그러나 선암사 해우소는 다른 절간의 해우소와는 달리 우아하고 고품한 기개가 엿보였다. 얼핏 해우소라는 글씨만 보이지 않았다면 부처님이라도 모셔놓은 법당 같았다.
나는 마침 소변이 보고 싶어 해우소 안으로 들어갔다. 마루바닥이 삐걱거리는데다 아래가 너무 깊어 혹시 발을 헛디뎌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조심조심 걸어들어가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그런데 그때 바로 시선이 머무는 곳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어진 종잇장이 보였다.
「소변을 몸 밖으로 버려버리듯 우리의 온갖 번뇌와 망상도 버려버립시다」
바로 그 순간, 분뇨냄새 나는 선암사 해우소는 마치 내 늙은 어머니의 품 안 같았다. 아니, 따스한 부처님의 품 속 같았다. 비극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삶, 눈물 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가 선암사 해우소 말고 달리 어디 가서 위로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암사 해우소가 인간의 오줌뿐 아니라 인간의 눈물마저도 한없이 받아주는 곳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선암사」는 이미 씌어지고 말았다./시인·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등·99년 동서문학상 수상
/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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