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1회 「나무를 심는 사람들」*민병갈 재단법인 천리포수목원 이사장·굿모닝증권 고문
*문국현(文國現)유한킴벌리 사장
*사회 = 서화숙(徐華淑)여론독자부장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너와 나는 누구인가. 2000년대를 맞으며 인류의 삶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한국일보는 이런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사회 명사들이 한 가지 주제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만남」난을 많이 아껴주십시오. [편집자주]
가을은 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또한 나무를 심기로도 봄에 지지 않을만큼 좋은 계절이다. 가장 고운 옷을 차려입은 나무들은 겨울을 맞이하느라 잠시 성장을 멈춰, 옮겨 심어도 몸살을 앓지 않고 잘 자란다고 한다.
힘들 때면 말없이 키 커가는 나무들, 서로 기대고 힘을 주는 숲을 보는 일만큼 힘이 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새로운 선진국으로 착근을 준비하는 1999년 가을에 나무 사랑이라면 지지 않을 두 사람이 만났다.
사회 = 두분은 서로 아시는 사이든가요?
문국현 = 제가 무척 존경하는 분입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는 장 지오노의 소설이 있습니다. 일평생 남부 프랑스에서 혼자 묵묵히 나무를 심어 황량한 산을 숲으로 가꿔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누리게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저는 바로 민선생님이 한국판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9월에는 민선생님을 뵈러 천리포수목원에도 갔었습니다.(문 사장은 「나무를 심는 사람」번역본과 이를 캐나다 작가가 만화영화로 만든 비디오, 민 이사장을 다룬 유한킴벌리 사외보를 꺼내 선물로 드렸다)
민병갈 = 아, 이런 작품이 있었군요. 정말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군요.
사회 = 두 분은 왜 나무심기에 나서게 되셨지요?
민병갈 = 한국에 살면서 불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절을 자주 찾았는데 주변에는 꼭 아름다운 나무와 꽃이 있더군요. 그런데 62년 충남 태안군 천리포 바닷가에 갔다가 할아버지 한 분이 땅을 좀 사달라고 하도 간곡히 부탁을 해서 4필지를 샀습니다. 처음에는 주위 경치가 좋아서 별장을 만들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70년에 평양에도 수목원이 있는데 한국에는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천리포에 제대로 된 수목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문국현 = 83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과 호주 등을 둘러보았는데 어디를 가든 나무와 숲이 있는데 반했습니다. 그래서 귀국하면 숲가꾸기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경기북부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아버지(문성규·文城奎·작고)께서도 나무를 유독 좋아해 이곳 저곳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영향도 많았습니다.
안식년을 마친 뒤 회사에 건의했더니 주주들이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래서 84년부터 국유림에서 조림과 간벌, 나무 섞어 심기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꾼 국유림이 1,956만평이고 해마다 200만평 정도씩 늘려가고 있어요. 숲은 토사유출을 막고 녹색댐 역할을 하며 공기도 정화하는 등 그 가치가 너무나 큽니다. 환경 경제 문화 관광자원으로서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산림선진국이 곧 경제선진국이라는 사실,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회 = 그동안 심거나 가꾼 나무는 몇그루나 됩니까.
민병갈 = 1만5,000종 정도 됩니다. 하지만 이 중 죽은 것도 있고 해서 수목원에는 현재 7,000여종이 있습니다.
문국현 = 평당 1그루 정도로 잡아 2,000만 그루쯤 되는데 양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요. 천리포수목원처럼 아름다운 숲은 세계 어디에도 드물 겁니다.
민병갈 = 전세계를 다니며 사모은 나무들이 꽤 됩니다. 목련은 전세계 400여종이 모여 있습니다. 97년에는 이곳에서 세계목련학회가, 98년에는 세계호랑가시나무학회와 세계수목학회가 열렸습니다. 지금 외국 수목원들과 종자를 교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저희 연구원들은 세계 어느 수목원에서도 환영을 받습니다. 지난해 영국왕립수목원에 유학한 연구원은 수석졸업을 했습니다.
문국현= 지금 우리나라는 나무를 많이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연상태와 같이 다양한 수종이 어울려 있는 혼효림 상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숲이 너무 촘촘해서 간벌을 적절히 해줌으로써 나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생명의 숲가꾸기 운동은 현재 간벌과 가지치기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사회=특별히 좋아하는 나무가 있습니까.
문국현=가로수 중에는 은행나무와 메타세쿼이아를 좋아합니다. 또 과실수도 좋아하고요. 메타세쿼이아는 생존력이 매우 강하고 성장속도가 빠른 속성수입니다. 우리나라에도 60년대 후반부터 많이 심었습니다.
민병갈= 후박나무가 좋아요. 바닷가에서 자라는 상록수라 겨울에도 잎이 싱싱하지요. (변산반도 후박나무 군락지는 천연기념물이다) 수목원을 만들 때 목수들이 천리포 앞 배뱅이섬에서 후박나무를 캐다가 수목원에 옮겨 심었어요. 제가 나무를 함부로 가져왔다고 크게 나무랐습니다. 그 뒤 사람들이 한약재로 쓴다고 껍질을 벗겨서 섬에 있던 후박나무는 다 죽었습니다. 수목원이 후박나무를 보전한 결과가 됐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온 지 55년째인데 은행나무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올해 처음 알았어요. 그런데 싫어하는 나무, 있어요?
문국현=나무마다 다 다르고 어울려 자라니까 말하기 곤란하지만, 굳이 들라면 칡이요. 칡은 너무 번성하면 다른 나무를 덮어버려 죽여버리거든요.
민병갈=저는 아까시나무예요. 아까시나무가 번성하면 소나무를 죽여버려요. 아까시나무가 미국에서 들어왔어요. 그런데 칡이 지금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숲을 다 죽이고 있어요.
문국현= 지난 주 애틀랜타에 갔더니 정말 칡이 미 남부지방을 덮어 거기 주민들이 다 한국 탓을 하더라구요. 제가 근거없이 말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민병갈 = 그런가요.(웃음) 그런데 나무가 땅마다 다 달라요. 조구나무를 미국에서는 팝콘트리(pop corn tree)라고, 씨가 떨어지면 팝콘처럼 튀어서 굉장히 빨리 번져서 아주 싫어하지요. 그런데 이 나무가 한국에서는 그렇게 번지지 않아요. 우리 수목원에도 있는데, 꽃이 참 예뻐요. 그러니 마구 번지는 나무는 나쁘지만...
문국현 = 그럼 선생님도 칡을 싫어하는데 동의하시지요?
민병갈 = 칡, 나쁘지 않아요. 즙을 소주에 타 마시면 얼마나 맛있는데요.
문국현 = 하긴 아까시도 꽃이 좀 좋아요? 꿀도 나오고.
민병갈 = 맞아요. 싫어하는 나무는 없어요.
사회 = 정부 정책에서 고칠 점은 없습니까? 힘든 점도 있으시지요?
민병갈 = 우리나라는 산림정책만큼은 훌륭해요. 세계적으로도 이만큼 빠른 시간에 숲이 잘 가꿔진 나라가 드물어요. 세계 학회 때문에 우리 수목원에 온 참석자들이 놀라더군요, 한국이 산이 이렇게 푸르냐고. 뉴질랜드에서 온 사람은 『우리나라보다 산이 더 좋다』고 했습니다.
문국현= 제가 나무심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정부는 나무 가꾸기에 드는 비용을 손비로 처리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40%나 되는 세금을 물었어요. 다행히 94년부터 세금이 완전 면제됐습니다. 다만 일반 시민들이 숲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좀더 잡아주었으면 합니다. 미국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산림청 명예직원이 된 사실을 평생 자랑스럽게 생각했거든요.
민병갈= 땅값이 크게 올라 걱정이예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서로 땅을 사달라고 해서 샀어요. 그런데 지금은 평당 100만원이니 살 수가 없어요. 지금 후원회원이 512명인데 수목원을 늘리기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배석했던 이규현 천리포수목원 총무부장은 『수목원 직원만도 18명이고 매년 3억~4억원인 경비를 민 이사장이 증권회사 근무로 번 돈으로 댄다』고 설명했다.)
문국현 = 저희가 시작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통해 도울 수도 있을 것 같군요. 귀중한 자연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그 땅을 사는 운동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회 = 시민들한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없습니까.
민병갈 =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꽃을 꺾고 사진 찍는다고 어린 나무싹을 마구 밟아 수목원을 개방하지 못했어요. 최근 수목원 후원행사가 열려 350여명이 이틀을 보냈는데 과자 봉지 하나 나오지 않았어요. 의식이 높아졌어요.
문국현= 일단 숲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숲의 가치는 저절로 알게 됩니다.
민병갈 = 자연과 접하면 사람들이 달라지지요. 언제 우리 수목원에 조구나무 보러 놀러오세요. 그때 나무 이야기를 더 합시다.
[정리=박광희기자] ]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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