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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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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세상"

입력
1999.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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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무엇일까.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눈을 뜨면 새로운 의혹만 무성하다. 실타래가 풀리기는커녕 꼬여만 간다.이 혼돈의 시발점이라 할 고가옷로비 사건은 특별검사의 수사에도 불구, 관련자의 말맞추기와 위증의혹 등으로 더 큰 지탄을 자아내고 있다. 의혹에 대한 첫 보도이후 검찰수사, 국회청문회 등으로 7개월 이상을 허비했다. 특검에 의해 영장이 청구됐던 관련자가 오히려 특검을 특검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서경원(徐敬元)전의원 밀입북사건 재조사는 어떤가. 검찰로서는 검사가 검사를 조사해야 하는, 「검란(檢亂)사태」를 예고하고 있다. 고문한 자는 없고 고문받은 자만 있었던, 조작 여부를 놓고 평행선을 달려왔던 이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검찰이 관련돼 있었다. 경찰총수가 카지노업자에게 10억원을 요구해 받아내고 이 돈을 받은 박처원 전치안감이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경감에게 도피자금으로 건네준 먹이사슬도 그렇다.

언론대책 문건사건은 모든 혼돈의 종합판이다. 중앙일보 문일현 기자의 편지 3장을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가 읽어보았는지, 평화방송 이도준 기자는 왜 문건을 훔쳤는지,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왜 이강래 전청와대정무수석을 지목했는지, 문건내용대로 언론장악의도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 주장만 있지 실체는 없다.

19일 한 독자는 한국일보 편집국에 전화를 걸어 『진실을 양심고백하는 사람에게 면책특권을 줘서라도 이런 사회적 혼란을 끝내자』고 하소연했다.

◆2,000달러의 진실은?

검찰이 찾아낸 「2,000달러 환전표」는 김대중대통령이 평민당 총재시절 서경원 전의원에게서 북한공작금 5만달러 중 1만달러를 받았다는 당시 검찰수사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물증이다.

89년 검찰은 서씨가 88년 6월19일부터 이틀간 밀입북, 북한 허담(許談)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아 귀국한 뒤 4만달러는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1만달러를 9월7일 김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서전의원이 4만달러 중 700달러는 해외여행경비로 쓰고, 3만9,300달러는 처제 임모씨에게 맡겨놓고 수시로 찾아 썼다며 환전표를 증거로 제시했다. 검찰은 당시 1만달러 수수혐의에 대해 『솔담배 2갑을 연결한 크기의 흰봉투를 서씨가 김총재에게 전달하는 것을 보았다』는 서씨 비서관 방양균씨의 진술을 정황증거로 채택했다.

그러나 검찰의 재조사가 진행되면서 서전의원 보좌관 김용래씨가 『귀국 직후인 9월5일 당시 조흥은행 영등포지점에서 2,000달러를 환전했다』고 진술한 것이 누락됐고 안씨가 89년 8월8일 조사를 받을 때 제출한 환전표와 사본이 증거에서 「배척」된 사실이 드러났다.

김대통령이 1만달러를 받지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환전표 등 증거물을 검찰이 무시하고 무리한 수사를 진행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12월19일과 12월26일의 진술

고가옷로비 사건 수사를 위해 특별검사제가 도입된 것은 「배정숙씨 주도의 실패한 옷로비」라는 검찰의 수사결과가 석연치않다는 국민적 의혹 때문이었다. 특검 수사의 1차 초점은 우선 연정희씨에 대한 옷로비의 실체가 무엇인지였고, 사건 축소·은폐가 있었는지 여부가 2차 초점이었다.

수사기간 만료가 한달도 채 남지않은 현재 특검이 1차 초점에 수사력을 집중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특검이 사건의 열쇠로 지목한 정일순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정씨를 축으로 사건을 풀어가려던 노력이 시간적으로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특검팀은 후자 쪽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검팀은 이에 대한 단서로 청문회 위증사실을 포착했다. 전면적인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를 통해 정씨의 의상실 장부조작 사실과, 연씨 배씨 정씨가 최소한 청문회 전 옷배달시점을 12월26일로 맞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검팀은 국회위증 부분 수사를 위해 18일 국회법사위에 고발을 요청했다.

하지만 국회위증부분에 대한 특검수사가 특검제법상 수사대상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고, 위증부분을 규명해도 결국 연씨등 관련자에 대한 개인적 처벌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2차초점의 해결 가능성은 그리 높지만은 않다.

◆사신(私信) 3장은 어디로?

중앙일보 문일현 전기자가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에게 문건과 함께 보낸 사신 3장은 도대체 어디 있을까. 검찰은 이 사신이 문건작성 동기 및 경위, 이부총재에 대한 보고여부 등을 밝혀줄 핵심단서로 보고 그동안 행방을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특히 이 사신은 문기자가 언론대책문건을 개인적인 소신에 따라 작성한 것인지, 아니면 언론장악을 위한 현 정권의 요청을 받고 작성한 것인지 여부를 판가름해 줄 유일한 물증인 까닭이다.

검찰은 수사초기 『사신을 포함한 원본 10장을 잃어버렸다』는 이부총재측 주장에 따라 평화방송 이도준기자를 집중추궁했으나 결국 이기자가 훔친 서류는 사신을 제외한 복사본 7장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사신은 애초부터 이부총재측이 갖고 있었으며, 파문이 일자 폐기했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이부총재측이 사신을 포함한 원본을 갖고 있었는지 여부는 알아서 판단하라』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12일에는 문기자가 중국에 숨겨놓은 노트북PC의 하드디스크를 찾아낸 뒤 복구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문기자가 내용을 완전히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사신에 문기자와 이부총재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내용이 담겨있었을 것이라는 추론만 가능할 뿐이다.

◆박처원씨에 10억 왜?

고문기술자 이근안씨의 10년10개월에 걸친 도피생활을 도와준 진짜 비호세력은 누구일까.

비호세력으로 밝혀진 박처원 전 치안감은 88년 12월24일 옛 부하 경찰관들과 함께 이씨를 만나 도피를 지시했다. 이어 1년쯤 뒤인 89년 11월 박씨는 당시 김우현치안본부장으로부터 옛 부하 경찰관을 통해 10억원을 받았다. 이 돈은 김씨가 카지노업계의 대부 전낙원씨에게 『경찰발전기금을 내달라』고 부탁해 받아놓은 것이었다.

이 10억원을 왜 모두 박씨에게 주었을까. 박씨는 이씨를 도피시킨 뒤에도 꾸준히 연락을 취해왔다. 편지도 받았다. 97년 12월에는 이씨가 박씨에게 부인 신모씨를 보내 1,500만원을 받았다. 1,500만원이 10억원의 일부일 것으로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씨가 도피 중 부인 신씨를 통해 박씨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한 것 등은 이씨가 10억원의 존재를 알았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서 박씨가 이씨에게 1,500만원만 주었을까 하는 의문이 파생한다. 박씨가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도 의문이다.

「대공수사의 대부」로 통했던 박씨가 전직 요원들을 챙겨주었던 점 등으로 미뤄 10억원의 대가로 「누군가로부터 모종의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황상진기자, 정덕상기자, 손석민기자, 박정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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