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친람(萬機親覽)이라고 한다. 임금이 온갖 정사를 다 살핀다는 뜻이다. 조선조 시대 배경의 한 TV 사극에서 이 말이 종종 나온다. 그 시절 백성들에게는 그런 지도자가 어울렸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어떤 국가 지도자가 바람직할까. 많은 사람들은 내심 국가지도자가 만기친람할 정도로 똑똑하기를 바란다. 실은 그것이 민주적 사고와는 동떨어져 있는데도 말이다.■지적수준이 높은 대통령일 수록 만기친람의 의욕이 강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대중대통령도 그런 타입이라고 보는게 타당할 듯 싶다. 김대통령은 우선 아는 것이 많다. 경험도 풍부하다. 게다가 환경이 그를 만기친람형의 지도자로 몰아 가는 측면이 크다. 그가 나서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요 근래는 부쩍 더하다.
■대통령 주변에 국정을 제대로 챙기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소리가 들린다. 청와대 참모진이 그렇고, 당도 그렇다. 청와대의 웬만한 비서들은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 총선에 나설 사람 투성이다. 당에 있는 측근들도 한두명을 제외하곤 국정을 챙길만한 소양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김대통령 혼자 고군분투하는 형국이다.
■대통령은 만기친람의 과중한 업무에서 벗어나야 한다.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파일이 잔뜩 쌓여 있다고 치자. 그 컴퓨터는 움직임이 느려 전혀 능률을 올리지 못하게 된다. 대통령의 머리도 그것과 같다. 머리가 비어 있어야 중요한 때 올바른 선택을 한다.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 대통령이 한가하게 노는 때가 많은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김대통령도 손자들에게 둘러싸여 즐겁게 망중한을 보내는 모습이 국민의 눈에 자주 비쳐지는 것이 좋다. 그러기 위해 웬만한 국정은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이른바 「시스템 국정」체제를 여권은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나라를 위해서는 똑똑한 리더뿐만 아니라 똑똑한 참모도 필요하다.
/이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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